[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곽경택 감독 영화 가운데 가장 담백하다. 2001년 서울 홍제동 방화 참사 소재로 제작된 영화 ‘소방관’은 신파로 흘러도 무리가 없는 구조다. 곽 감독은 뚝심으로 연출했따. 비극적 소재를 최대한 절제하며 꾹꾹 눌러담았다. 덕분에 소방관의 헌신과 희생을 부각했다. 눈물은 영웅에 대한 헌사다.

결말을 알고 스크린 앞에 앉는 영화다. 어떤 반전도 없다. 예기치 않은 사건도 로맨스도 없다. 영화적 장치도 배제했다. 이런 덜어냄 덕분에 참사 발생 전 소방관들의 담소와 해맑은 웃음은 더욱 아리게 다가온다.

‘소방관’은 배우 곽도원 음주 운전 이슈로 영화 개봉이 미뤄졌다 내달 4일 개봉한다. 곽 감독은 “곽도원이 원망스럽다”고 했지만, 영화에서 그를 거의 편집하지 않았다.

아니, 편집할 수가 없었다. 구조반장 진섭(곽도원 분)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신입소방관 철웅(주원 분)과 함께 서사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다.

영화는 화재 진압 현장을 수미상관으로 배치해 극을 끌고 나간다. 촬영 후 4년 만에 빛을 본 영화는 트렌드에 맞춰 화재를 진압 장면을 속도감 있게 편집했다. 초반 몰입감이 빼어난 이유다.

인물 관계도 단순화했다. 진섭은 전국 구조 건수 1위를 달리는 구조대장이다. 현장에서 판단을 더 중요시한다. 구조대원보다는 구조자 생명을 우선시한다. 철웅은 그로 인해 형 용태(김민재 분)를 잃게 된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한 인기의 신념과 용태가 가진 울분은 충돌을 빚는다.

영화는 중반부에 이르러 순직한 6인 소방관이 겪는 고충과 열악한 환경을 조명한다.

2001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도 침대조차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옛 군대 내무반을 연상케 하는 잠자리에 탄식이 나온다. 스치기만 해도 찢어지는 방화복이 방수복이나 다름없다는 진섭의 외침은 허공의 메아리다. 목장갑을 끼고 화재 현장에 나서야 하는 구조대원들 안전을 위해 구조대장 인기(유재명 분)가 사비로 방화 장갑을 사는 장면은 처연하기까지 하다.

알고 보는 결말을 마주하는 감정을 추스르기 쉽지 않다.

2001년 3월 4일 오전 3시 47분. 서울서부소방서(현 은평소방서) 소방차 20여 대와 소방관 46명이 출동했다. 불법 주차된 차들로 인해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했다. 치킨집을 열기로 도순(장영남 분)과 약속하고 퇴임을 한 달 앞둔 인기는 “차에서 내려”라고 소방대원에게 지시했다. 소방관은 공기통을 매고 150m 떨어진 곳에서부터 뛰기 시작한다.

오전 4시 10분. 1차 진화에 성공하며 집주인 및 세입자 가족 등 7명을 무사히 대피시켰다. 비극은 예상치 못한 말에서 시작된다. “아들이 집에 있다”는 집주인 말에 소방관은 다시 화마(火魔)로 뛰어든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던 아들은 방화범이었기에 건물에 있을리가 없었다. 오전 4시27분. 노후화된 건물이 붕괴하며 소방관 6명이 산화(散華)한다.

영화는 무척 건조하다. 오열로 가득한 한국 영화 특유 장례식장 장면을 덜어냈다. 유가족이 울부짖는 장면도 없다. 방화범을 악마화하지도 않았다. 합동 장례식에서 눈물 가득한 철웅이 좋은 소방관이 되겠노라고 다짐하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신파로 눈물을 쏙 빼지 않은 곽 감독 선택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친구’(2001) ‘암수살인’(2018) 이후 절치부심했던 곽 감독이 힘을 뺀 연출에 소방관 어깨에 힘이 실릴 만한 영화다. 붉은 화염과 매캐한 연기 밸런스를 잘 조절하며 유려한 그림을 만들어낸 ‘웰메이드 영화’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