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편히 쉬세요. 사랑합니다.’
지난 9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레이크플래시드에서 열린 2015~2016시즌 국제봅슬레이드·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4차 대회 시상식. “남은 월드컵 메달을 모두 가져오라”며 향년 6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스승의 유언에 값진 동메달로 화답한 한국 봅슬레이 2인승 간판 원윤종(31·강원도청)과 서영우(25·경기도연맹)는 시상대에서 이 같은 글귀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웃었다. 다음 날엔 스켈레톤에서 윤성빈(23·한국체대)이 올 시즌 최고 성적인 은메달을 거머쥐며 또다시 스승을 추모했다.
지난 3일 암으로 세상을 떠난 영국 출신 맬컴 로이드 코치는 봅슬레이 경력만 4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영국 스완지시티 출신인 그는 선수 시절 영국 대표로 올림픽에 4차례(1972 1976 1980 1984) 출전했다. 1984년 캐나다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뒤 미국과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에서 후배들을 지도하며 7차례나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썰매와 관련해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대표팀을 맡아 주행 기술과 트랙 적응 방법을 전수했다. 특히 세계 여러 경기장을 누빈 그는 대회마다 선수들에게 맞춤 훈련으로 빠른 성장을 이끌어냈다. 원윤종-서영우가 월드컵 1,2차 대회에서 연달아 동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봅슬레이 새 역사를 쓴 것도 로이드 코치의 역량에서 비롯됐다. 자신의 종목은 아니나 스켈레톤 선수들에게도 언제나 다정다감하게 다가서며 챙겼다고 한다. 특히 윤성빈이 썰매 안쪽에 아이언맨 그림을 새기고 싶다고 하자 로이드 코치가 직접 나서서 처리한 건 유명한 일화다.
|
|
그간 암 투병과 관련해서 대표팀 내부에 전혀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연말 휴가차 캐나다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세상을 떠나게 됐다. 로이드 아내 등 가족들이 영국 ‘BBC’ 등과 인터뷰한 것을 보면 끝까지 한국 대표팀 합류를 위해 애썼다. 이보 페리아니(이탈리아)IBSF 회장은 “봅슬레이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인물을 잃었다”고 통탄했고, 영국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도 “가장 뛰어난 봅슬레이 지도자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측은 “로이드 코치가 평소 약을 복용한 건 알았으나 설마 암인 줄 몰랐다”며 “훈련장에선 엄격하게 하면서도 일상에선 다정한 지도자였다. 갑작스러운 스승의 죽음으로 선수들이 슬퍼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드 부인은 “남편이 (한국 선수들에게)남은 월드컵에서 꼭 메달을 가져오라”는 유언을 했다고 전했다. 월드컵 4차 대회를 위해 미국에 넘어온 봅슬레이, 스켈레톤 선수들은 대회 이틀 전인 7일 현지에서 추도식을 했다. 이틀 뒤 경기에 나선 봅슬레이 원윤종 서영우는 썰매와 헬멧에 로이드 코치를 추모하는 스티커를 붙이고 출전했다. 1,2차 합계 1분51초12로 2위와 0.01초 차이로 동메달을 따냈다. 세계랭킹은 2위로 도약했다. 스켈레톤 윤성빈도 썰매에 로이드 코치의 스티커를 붙이고 출전해 세계 1위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1분48초28)에 0.48초 뒤진 1,2차 합계 1분48초76으로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세계랭킹 4위로 올라섰다.
경기 외적으로 뒤숭숭한 상황에서도 스승의 유언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이뤄낸 값진 성과였다. 변변한 훈련장 하나 없고, 열악한 지원에도 노하우를 전수한 로이드의 정성은 그가 없어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는 한국 썰매의 저력으로 거듭난 것이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