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영남

[스포츠서울 박효실기자]가수인 본업만큼이나 화가로도 명성을 쌓아온 조영남(71)이 43년 화업 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화가로서는 치명적인 대작(代作) 의혹이다. 춘천지검 속초지청은 16일 무명화가 A씨(61)가 한 점당 10만원 안팎의 대가를 받고 조영남의 그림을 그려줬다는 의혹을 접수, 조영남의 소속사와 갤러리 등 3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했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조영남에 사기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기란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는 범죄다.

이번 사건은 A씨가 검찰에 관련 사실을 제보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A씨는 조영남이 자신이 그려준 그림을 조금 손본 뒤 자신이 그린 것처럼 전시·판매하자 이를 신고했다. 검찰 수사 소식이 전해지자 조영남 측은 “지인을 통해 알게 된 A씨에게 일부 그림을 맡긴 것은 사실이나 지난 3월 팔레 드 서울에서 연 개인전에 전시한 50점 중 6점에 지나지 않는다. A씨의 도움을 받은 그림은 한 점도 판매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논란이 커지자 조영남은 17일 MBC표준FM ‘조영남 최유라의 지금은 라디오시대’에 잠정 하차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진은 조영남의 의사를 존중해 당분간 임시DJ를 대타로 투입했다.

조영남은 40년전부터 화투를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려왔고 1973년 한국화랑에서 첫 미술 전시회를 연 후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뉴욕, LA 등 해외에서도 전시회를 열며 화가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이달 초에는 아트페어경주에서 화업 40년을 기념하는 조영남 특별전을 열기도 했다. 화투를 소재로 한 그림은 민화처럼 쉽고 단순하면서도 재밌어 한 점에 수백만원에 판매돼 왔다.

한편 조영남의 대작 의혹을 놓고 “미술계의 관행”이라는 입장과 “대중을 기망한 사기”라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서울대 미학과 출신의 시사평론가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검찰에서 ‘사기죄’로 수색에 들어갔다는데 오버액션이다. 개념미술과 팝아트 이후 작가는 콘셉트만 제공하고 물리적 실행은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게 꽤 일반화된 관행”이라며 “핵심은 콘셉트다. 작품의 콘셉트를 누가 제공했느냐다. 그것을 제공한 사람이 조영남이라면 별 문제 없는 것이고, 그 콘셉트마저 다른 이가 제공한 것이라면 대작”이라고 주장했다.

미술계에서는 마르셸 뒤샹 이후로 화가가 직접 작품을 만드는지 여부는 무의미한 논쟁이 됐다는 입장이다. 1917년 뒤샹은 남성용 소변기를 벽에 붙여 ‘샘’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했다. 소변기를 무엇으로 보느냐는 시각이 곧 작가의 고유한 콘셉트가 된 것.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은 통조림 포장지, 담배회사 로고 등을 복사하는 기법으로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조영남을 옹호하는 쪽의 네티즌들은 “앤디워홀이 하면 예술이고, 조영남이 하면 사기가 되냐”는 입장이다. 반면 반대하는 측에서는 “논문은 한줄만 베껴도 표절인데, 미술은 90% 그려줘도 관행이라니”, “그림 산 사람들만 속았네”, “남이 그린 그림에 사인만 하는 거면 찍어내는 그림공장과 뭐가 다른가”라는 입장이다.

gag11@sportsseoul.com

가수 조영남. 최재원기자shin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