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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도=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당구의 유래는 르네상스 바람이 일기 시작한 14세기 후반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에서 귀족의 사교 스포츠로 정착된 시기로 보고 있다. 하지만 본고장 유럽도 1000만 동호인을 자랑하는 한국 당구만큼 인프라가 폭넓고 뿌리 깊은 곳은 없다. 국제 무대에서 최근 한국 당구가 호성적을 거두면서 세계 톱랭커들도 국내 시장에 관심을 두고 있다.
한국 당구는 인프라에서 우수하나 정작 미래지향적 행정과 학원 스포츠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 덜 갖춰져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수많은 전문가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당구장 금연법으로 향후 상품가치가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프랑스 보르도에서 막을 내린 당구 최고 권위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서 깜짝 준우승을 차지한 1992년생인 김행직(전남연맹)이 지난해 국내 대기업과 후원 계약을 체결한 것도 궤를 같이한다. 이제는 모든 당구인이 염원하는 프로화를 위한 초석을 다져야 한다.
한국 당구계에 프로리그 존재의 중요성은 국제 대회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87년 첫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뒤 아직도 3쿠션 세계 1위를 지키는 토브욘 브롬달을 비롯해 프레드릭 쿠드롱,에디 먹스,다니엘 산체스 등은 20~30년 가까이 톱랭커 지위를 누리고 있다. 반면 한국은 당구 강국 대열에 들어섰으나 꾸준하게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는 자원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2014년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세계 1위에 올랐던 최성원은 올해 랭킹 순위에서 밀려 출전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또 지난해 준우승을 차지한 강동궁(동양기계)은 아쉽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월드컵 우승 경험이 있는 조재호(서울시청)는 8강에서 물러났다. 막내 김행직이 첫 출전에서 준우승이란 값진 성과를 거뒀으나 국내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제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선수들은 다른 나라 톱랭커들이 꾸준하게 국제 대회에서 성적을 거두는 것을 두고 ‘경험의 질’을 강조했다. 김재근(인천연맹)은 “톱랭커들은 대부분 유럽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다. 매년 열리는 월드컵,세계선수권에 나오는 선수들과 프로리그에서 자주 겨룬다. 그만큼 상대 스타일을 가까이서 분석할 수 있고 1년 내내 경기감각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르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톱랭커는 커녕 우리끼리 경기하기도 쉽지 않다. 국제 대회에 나가야만 우수한 선수들과 겨룰 수 있다. 그마저도 계속 이겨서 올라가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조재호는 한국 당구의 명맥을 잇는 학원스포츠와 유소년 육성을 위해서라도 프로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간간이 (당구를 쳐서)얼마나 돈을 버느냐고 묻는 팬이 있다. 안타깝게도 당구대회 상금은 현격히 적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수익이 적은 스포츠를 권하겠느냐”며 “프로 출범으로 당구산업 규모도 커지고 학원스포츠에도 잠재력 있는 선수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프로화의 선결 조건은 단연 스폰서의 존재. 그간 자욱한 담배 연기로 상징하는 당구 이미지로 선뜻 스폰서로 나서려는 기업이 적었다.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할 대한당구연맹도 최근까지 어수선한 내부 사정으로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바빴다. 지난 8월 새 수장으로 선출된 남삼현 회장은 “내부 쇄신을 바탕으로 여러 당구인과 소통해 유럽의 선진적인 시스템을 받아들여 프로화의 밑거름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조재호는 선수도 달라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우리를 주변에선 ‘프로님’이라고 부른다. 프로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마인드가 돼 있어야 한다. 아직도 하루 1~2시간 연습하고 저녁에 술 마시고 늦게까지 잠자고 일어나는 선수가 있다. 그건 프로가 아니다. 스스로 프로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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