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게은 인턴기자] 배우 유해진은 대한민국 영화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흥행작의 주역이다.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주연이 아닐 때도 많았지만 다채로운 모습으로 색깔있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 '왕의 남자', '타짜', '베테랑', '택시 운전사'에 이어 현재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1987'까지 그의 활약은 현재진행형이다.
그가 '1987'에서 연기한 한병용은 교도관 노조 설립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파면된 후 복직된 교도소 교도관이다. 유해진은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려는 한병용이라는 캐릭터를 잘 녹여내 극에 힘을 실었다. '1987'은 지난 15일 12만8965명의 관객을 모아 누적 관객 수 591만 6096명을 기록해 600만 돌파를 눈앞에 뒀다.
지금은 명실상부 대체불가한 배우지만, 처음 연기에 발을 들여놓는 것부터 순조롭지 않던 어려운 시절도 있었다. 그는 중학교 2학년이던 15세 때, 故 추송웅의 연극 '우리들의 광대'를 보고 연기에 매료돼 배우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대학교 연극과에 진학하려 했지만 세 번 낙방하며 실패했다.
유해진은 아버지의 권유로 방향을 틀어 의상학과로 진학했다. 하지만 연기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그는 의상학 공부보다 연극에 매진했다. 제대를 하고 나서도 배우의 꿈을 갈망했고, 결국 다니던 대학교를 중퇴해 서울 예술대학교 연극과에 입학했다.
이후 오태석 교수의 극단 '목화'에서 본격적으로 연기 인생을 시작했고 김응수, 손병호, 박희순, 정은표 등과 함께 극단 동문으로 활동했다. 유해진은 과거 인터뷰에서 "극단에 있을 때 동료 배우가 슬쩍 불러 조명실로 가보면 날 위해 햄버거를 사놓곤 했다. 그때는 버스비를 아껴 빵 하나 사 먹었다"고 말하며 힘든 시절을 회상한 바 있다.
유해진의 스크린 데뷔는 27세이던 1997년 영화 '블랙잭'을 통해 이뤄졌다. 이후 '간첩 리철진', '무사', '주유소 습격 사건', '신라의 달밤', '공공의 적' 등에 출연했지만 그가 맡은 역할은 '어깨 2', '양아치 1'같은 단역이었다.
무명의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갔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역할을 묵묵히 해내며 작품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2005년 영화 '왕의 남자'를 통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왕의 남자'에서 조연이었지만 능청스러운 연기로 신스틸러의 면모를 드러냈다. 유해진 만의 억지스럽지 않은 감초 연기가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다.
'왕의 남자'는 관객 수 100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에도 대성공했다. 유해진은 '왕의 남자'로 제43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리기 시작했던 그때 그의 나이 35세였다.
이후 '혈의 누', '그 해 여름', '국경의 남쪽', '타짜'에 출연해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더욱 확실히 각인시켰다. 특히 유해진은 '타짜'에서 고광렬 역을 맡아 개성 넘치는 연기를 선보여 다시금 주목받았다.
2007년 '트럭'을 통해 생애 첫 주연을 맡았지만 흥행 성적은 저조했다. 그래도 유해진은 멈추지 않고 '전우치', '이끼', '부당 거래', '감기' 등에 출연하며 다작 행보를 이어갔다. 그러던 2014년 8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해적: 바다로 간 산적'으로 또다시 진가를 발휘해 제51회 대종상, 제35회 황금촬영상, 제51회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해적단에 속해있다가 멀미 때문에 산적단으로 이적하는 '철봉'역을 맡아 코믹 연기의 진수를 선보였다.
이듬해 개봉한 '베테랑'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인생 작품을 하나 더 추가했다. '베테랑'은 관객 수 1300만명을 돌파했고 그가 선보인 악역 연기도 호평받았다. 안하무인 제벌 3세의 오른팔 최상무 역을 맡아 냉정하고 날카로운 연기를 펼쳤다.
2016년 '럭키'를 통해서는 첫 단독 주연을 맡아 69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믿고 보는 흥행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같은 해 10월 발표한 영화배우 브랜드 평판조사에서 공유, 정우성을 제치고 1위 자리에 올랐다. 현빈과 투톱 주연으로 나선 '공조'로는 약 78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극장가를 휩쓸었다. 이어 선보인 '택시운전사'에서 유해진은 따뜻하고 정의로운 택시기사 황태술 역을 맡아 잔잔한 울림을 선사했다. 또한 '택시운전사'가 자신의 세번째 1000만 영화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그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매력을 듬뿍 쏟아냈다.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 2일', tvN 예능프로그램 '삼시 세끼 어촌편', '삼시 세끼 고창편'에 출연해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했다. 구수한 말투에서 드러나는 유머감각과 인간적인 모습은 대중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유해진은 늦은 나이에 데뷔한데다 무명이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도 지나왔다. 하지만 그럴수록 단역을 마다하지 않고 발군의 연기력을 다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로 우뚝 섰다. 지금까지 그가 출연한 영화의 누적 관객수가 1억명을 훌쩍 뛰어넘는 기염도 토했다.
흔한 사생활 논란 한번 없이 구수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그는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면모를 갖췄다. 배우 인생 21년 동안 그가 묵묵히 걸어온 발자취는 앞으로의 행보를 더욱 기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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