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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전을 치른 축구대표팀의 이동국(오른쪽)이 지난해 9월 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진행된 환영 행사에서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감독이었던 이회택 점 감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있다. 인천국제공항 |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이동국은 NO, 이청용은 OK….

신태용호 엔트리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신태용 축구 대표팀 감독은 2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2018 러시아월드컵 선수 선발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14일 23인 엔트리를 공개할 예정이라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이동국(전북)에 대한 방침만은 확실하게 드러냈다. 이동국은 올시즌 K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토종 골잡이로 활약 중이다. K리그1 5골,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4골을 넣어 시즌이 세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두 자리 수 득점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골만 잘 넣는 게 아니라 경기력 자체가 좋기 때문에 일각에선 이동국 선발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이동국보다 잘하는 스트라이커를 찾기 어렵다보니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러나 신 감독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이동국이 나이는 있지만 경기를 상당히 잘 하고 있다. 선발로 나가는 것은 물론 교체로도 마찬가지”라며 칭찬하면서도 “지난해 월드컵 최종예선을 마치고 동국이와 한 얘기가 있다. 동국이도 스스로 물러나줘야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월드컵이라는 큰 대회에 나가기 때문에 동국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좋은 기회에서 골을 못 넣었을 때 악플 등에 시달릴 수도 있다. 민감한 부분이다. 이동국은 월드컵에 가지 못한다”며 선발 계획이 없음을 명확하게 밝혔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결정이었다. 신 감독은 지난해 월드컵 예선 이후 손흥민(토트넘)과 황희찬(잘츠부르크), 김신욱(전북), 이근호(강원) 등 여러 공격수들을 테스트 했다. 이 과정에서 이동국은 한 번도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다. 대회 직전 합류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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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용이 지난 2016년 9월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중국전에서 후반전 골을 넣고 있다. 최승섭기자

반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좀처럼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는 이청용(크리스탈팰리스)은 선발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청용은 이번 시즌 리그에서 6경기 출전에 그쳤다. 선발로는 딱 한 번 뛰었다. 그마저도 지난해 9월 일이다. 출전 시간을 모두 합쳐도 130분 정도에 불과하다. 경기 감각이 우려되는 만큼 선발에도 부담이 크다.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의 박주영(서울) 사례를 생각하면 된다. 당시 감독이었던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소속팀에서 거의 뛰지 못하던 박주영을 뽑았는데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였고 결국 여론의 거센 비난에 직면했다. 이와 같은 선례에도 신 감독은 소신 있게 이청용을 선택할 전망이다. 그는 “출전 명단에는 들고 있기 때문에 50대50”이라고 짧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청용은 꾸준히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경기에 나갈 몸 상태가 된다는 의미다. 신 감독은 지난달 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팀에서 못 뛰어도 필요하면 뽑겠다”라며 이청용 선발을 시사했다. 50% 확률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러시아로 데려갈 생각이다. 이청용은 전성기 시절 EPL 수준급 윙어였다. 기술이 좋아 짧은 패스 축구를 추구하는 신 감독 철학에도 부합한다. 월드컵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라는 점도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신 감독이 선발에 무게를 두는 이유다.

문제 되는 판단은 아니다. 선수 선발은 감독의 교유 권한이다. 외부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다. 아쉬운 건 이동국을 향한 신 감독의 발언이다. 확실하게 “내가 원하는 유형의 공격수가 아니다”라고 못 박으면 잡음이 나오지 않을 텐데 ‘후배’, ‘악플’ 등을 선발하지 않는 근거로 삼은 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월드컵은 최정예 23인으로 나가는 무대다. 유망주를 키우는 대회도 아니다. 나이는 실력의 판단 기준이 아니다. 나이가 많아도 잘하면 갈 수 있는 게 월드컵이다. 신 감독 입장에선 베테랑을 배려해 꺼낸 말일 수 있지만 판단하기 애매한 이유가 잡음을 만든 모양새다. 실제로 적지 않은 팬들이 신 감독의 발언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같은 날 대구전 이후 이동국이 꺼낸 “대표팀에서 은퇴한 건 아니”라는 의미심장한 말도 신 감독의 주장과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두 선수의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부상자들의 회복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신 감독은 최종 23인에 추가인원 선발을 고려하고 있다. 김진수와 홍정호(이상 전북) 등의 회복시기가 명확하지 않다. 그 중 대체자가 마땅치 않은 왼쪽 풀백 김진수가 가장 큰 고민거리다. 신태용호 주전 왼쪽 풀백인 김진수는 지난 3월 유럽 원정에서 무릎 인대를 다쳤다. 월드컵 출전을 위해 재활에 매진하고 있지만 아직 러닝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신 감독은 애를 태우며 재활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만약의 경우 대체자를 찾아야 한다. 그는 “김진수 등 몇몇 선수 때문에 23명으로 결정할지, +α를 더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일단 김진수를 데려간 후 대회 직전까지도 준비되지 않을 경우 예비 인원을 월드컵 본선에 합류시킬 수 있다는 의미다. 엔트리 발표가 약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신 감독의 시계도 예민하게 돌아가고 있다.

we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