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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스포츠서울 유인근 선임기자]요즘 한국바둑은 우울하다. 무엇보다 각종 세계대회에서 중국바둑에 밀려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특히 자존심을 건 한중일 국가대항전인 농심신라면배에서도 저조한 성적으로 바둑팬들의 사기가 땅에 뚝 떨어진 상태다. 그나마 단비같은 소식은 삼성화재배 결승에 오른 안국현 8단의 세계대회 첫 우승 도전이다. 오는 12월 3일부터 시작되는 2018 삼성화재배 월드마스터스 결승 3번기를 앞둔 안국현(26) 8단을 제20회 농심신라면배가 열리고 있는 부산 농심호텔에서 만났다. 대국은 없었지만 그는 동료들 응원차 부산을 찾았다.
이번 삼성화재배에서 안국현은 지난해에 이어 한국선수로는 유일하게 2회 연속 4강에 올랐고 올해는 결승까지 오르며 한국바둑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4강전에서 가장 먼저 결승 진출을 확정한 후 “결승 상대로 커제 9단이 올라 왔으면 좋겠다”다고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중국바둑의 전성기를 맨 앞에서 이끌고 있는 현역 최고의 기사로 평가받고 있는 커제를 겁없이 선택한 이유가 가장 궁금했다.
대답은 쿨했다. 그는 “커제 9단은 바둑을 잘 둘뿐더러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 누구보다 시원시원해 좋아하는 기사중 한 명이다. 전부터 결승에 오른다면 이왕이면 강한 상대와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웃음을 지었다. 그의 바람대로 결승 상대는 커제로 정해졌다. 주변에서는 커제가 워낙 대단한 상대이다보니 벌써부터 안국현의 열세를 점치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 살짝 기분이 상할 법한데 그는 “당연하다. 지금까지 보여준 것이 그렇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동안 커제 9단의 기보를 많이 연구했고 지난해에 비해 한 단계 성장했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며 자신감을 한껏 내비쳤다.
그런 자신감의 근거는 무엇일까. 기록이 말해준다. 올시즌 그는 한국기사들이 애를 먹고 있는 중국기사를 상대로 8승1패를 거둬 ‘중국킬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본선 32강부터 중국 기사들을 상대로 6전 전승을 거두며 결승에 올랐다. 커제도 중국기사다. 안국현의 기세를 보면 커제가 무서울 이유가 없다. 그는 유독 중국기사에 강한 이유를 “한국바둑은 선이 굵은 편인데 중국바둑은 안정적으로 실리를 구하는 편이라 무난함을 추구하는 내 스타일과 잘 맞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하나 근거는 그동안의 노력이다. 안국현은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등장한 이후 바둑의 추세는 많이 변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통해 보다 많은 대국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안전함을 추구하고 견고해지는 추세다. 지난해부터 인공지능을 통해 많은 대국을 두면서 내 바둑도 한층 단단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결승 진출로 9단 승단을 예약한 안국현은 이번 삼성화재배 결승 3번기를 마치면 군에 입대할 예정이다. 26살, 더 미루기보다 군 복무를 마친 후 바둑에 집중하겠다는 판단에서다. 입대는 다가오는 결승을 앞두고 큰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그는 “입대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큰 선물을 하고 싶다”면서 “우승하지 못할 바에는 일찌감치 예선에서 탈락한 것과 다를게 없다. 여기까지 올라온 이상 꼭 우승하고 싶다”고 환한 미소 속에 비장한 각오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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