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게은기자] 한 주를 마무리하는 '불금'은 그 어느 날보다 가볍고 유쾌하게 보내는 게 제일이다. 머릿속 복잡한 생각은 잠시 잊고 TV로 눈을 돌려 휴식을 취하는 것도 그 일환일 터. 이럴 때 더없이 제격인, 기자가 강력하게 추천할 수밖에 없는 드라마가 나타났다. tvN 불금 시리즈 '막돼먹은 영애씨'(이하 '막영애') 시즌 17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8일 때론 억척스럽게, 때론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12년 동안 시청자들과 동고동락해온 이영애(김현숙 분)가 어머니로 인생 2막을 활짝 열며 귀환했다. 돌아온 이영애는 제 식솔을 꾸린 대한민국 평범한 워킹맘이었다. 일상을 온전히 아이에게 투자하는, 그래서 일상이 사무치게 그립기도 한 우리네 젊은 엄마들의 모습.


첫 에피소드는 멧돼지를 물리치는 이영애의 활약상으로 시작됐다. 대나무처럼 한결같이 굳세고 터프한 이영애 캐릭터 고유의 모습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또한 기존 멤버인 이승준(이승준 분), 라미란(라미란 분), 윤서현(윤서현 분), 정지순(정지순 분), 김혁규(고세원 분) 등을 비롯해 성격 급한 사장 정보석(정보석 분), 이규한(이규한 분)의 새 어시스턴트 연제형(연제형 분), 신입 경리 나수아(박수아 분)가 새 캐릭터로 합류하며 조화를 이뤘다. 이영애의 딸 헌이의 등장도 소소한 재미를 더했다.


이번 시즌에서 이영애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을 맞이했다. "결혼은 언제 하니?"라는 부모님의 잔소리에서 탈피했지만, 그 빈자리는 육아로 채워졌고 '어머니'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제 외출을 해도 헌이, 유모차와 한 몸이었다. 이처럼 180도 확 바뀐 변화를 맞았지만 사이다 활약은 여전했고 워킹맘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와 적절히 버무려진 개그 코드는 첫 회를 호평으로 이끌었다.


'막영애' 롱런의 서막은 시즌1이 시작됐던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거뜬히 뛰어넘은 '막영애'가 새삼 더욱 대단하게 느껴지는 시점이다. 수많은 작품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막영애'는 꼿꼿했다. 거액의 제작비를 투자한 것도,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출연한 것도 아니었는데, 아스팔트도 뚫고 올라오는 민들레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그 동력은 '솔직함'에 있었다. '막영애'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포장 없이 날것 그대로 녹여내왔다. 특히 시즌1은 6mm 카메라를 사용해 다큐멘터리 방식을 표방, 더없이 솔직하게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는데 성공했다. 일반적으로 접하는 드라마라기보다 '인간극장'이 오버랩됐다. 현재는 여느 드라마처럼 지미집, 헬리캠 등이 투입돼 고퀄리티를 보여주고 있지만.


시청자들에게 '막영애' 캐릭터들은 곧 내 모습이기도 했고 우리 부모님, 가족, 친구, 직장 상사였다. '대독(대머리 독수리)'이라고 불렸던 영애의 회사사장 유형관, 밉상과 진상의 케미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정지순과 라미란, 짠내나는 만년 과장 윤서현까지 어느 회사에서나 있을 법한 그들의 모습은 이질감이 없었다. 평범한 나였으며, 또 내 주변 사람들이었다. 이 같은 현실적인 공감대가 롱런의 이유이자 무기였다.


시즌1부터 이어진 '막영애'만의 아이덴티티는 시즌17에도 고루 녹아있어 반가움은 배가 됐다. '막영애'가 어떤 이야기들로 불금 오후 11시를 책임질지 걱정보다 기대가 앞서는 이유다. 물론 이전 시즌들과 비교하면 로맨스가 사라지고, 현실 결혼 이야기가 시작돼 어떻게 재미와 공감을 변주할지는 미지수. 하지만 12년의 내공이 있기에 기우가 아닌 기대가 더해진다. '막영애'가 다시금 대한민국 최장수 드라마의 위엄을 드러낼 수 있을지 지켜봐도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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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ㅣ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tvN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