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흥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이 29일 서울올림픽회관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장강훈기자]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정치집단 같다. 철저한 정치공학 안에서만 의사발언을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2020 도쿄올림픽 개최를 두고 캐나다와 노르웨이 등 세계 각국 올림픽위원회(NOC)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9년 대한체육회로 통합된 KOC는 “7월 정상 개최를 염두에 두고 차질없이 준비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인 상황에 올림픽 개최 강행의사를 내비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IOC와 일본이 세계인들에게 비난 받는 이유는 겉과 속이 다른 말과 행동 때문이다. 겉으로는 “선수와 관계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완전한 형태로 올림픽을 개최하고 싶다. 아직 개막까지 4개월이나 남아있어 어떤 예측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코로나19 확산세를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도 올림픽 개최 의지를 접지 않은 것만으로도 비난 받아 마땅하다. 올림픽을 연기하려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세계 각국 사정도 차이가 있고, 준비하는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 천문학적인 중계권료와 광고비 등도 재검토해야 한다.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 NOC는 ‘공정성과 안전성’을 이유로 올림픽 연기에 목소리를 냈다. 불 보듯 뻔한 피해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자국민과 선수들 안전을 위해 불가항력으로 연기해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승민
ICO 선수위원인 유승민 대한탁구협회 회장.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그러나 KOC는 IOC 토마스 바흐 회장이 코로나19 대응 첫 화상회의를 할 때부터 일정 연기 카드를 꺼내들 때까지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종목 대표로 회의에 나선 세계태권도연맹 조정원 총재부터 IOC선수위원인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도 “IOC의 의견을 지지한다”는 영혼 없는 말만 했다. 오죽하면 일하지 않는 국회에서도 “현 상황에서는 ‘체육교류를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올림픽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며 “KOC가 JOC에 올림픽 연기를 공식 요청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4·15 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정당 정치인 조차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에 올림픽을 개최해야 하는지 의문을 표하는데, 한국 체육정책과 실무를 총괄하는 대한체육회는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적 목적이 가장 커 보인다. 이미 지난해 9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유출된 방사능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아 올림픽을 연기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한일관계 악화 등 정치적 이유로 올림픽 보이콧을 하는 것은 대한체육회와 KOC 존재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일축했던 조직이다. 체육회 관계자는 “진정한 ‘극일’은 올림픽에 당당히 출전해 일본을 꺾고 메달을 따는 것”이라는 진부한 의견을 내놓기까지 했다. 이들의 발언에 선수들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조정원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그 기저에는 훨씬 더 큰 밑그림이 깔려 있다. 한국은 2032년 평양과 공동 올림픽 개최를 희망하고 있다. 북한 안보 상황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로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 일부 국가가 ‘안전’을 이유로 보이콧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KOC가 도쿄올림픽에서 안전을 이유로 목소리를 내면, 훗날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지레 겁을 먹은 모양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올림픽을 유치한 뒤 얘기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두고 벌써 눈치 봐가며 줄서기 하는 모양새는 공천권 한 장에 철새처럼 날아다니는 또다른 집단을 보는 듯 하다. 별로 세련되지 않은 한국 체육 행정 실태를 고려하면, 지나친 정치공학은 역풍을 몰고올 수 있다. 한국 체육계 수장이 자국 선수 안전에는 뒷짐 쥔 채 눈치만 보고 있으니 체육발전도 요원해 보인다. 스포츠는, 체육인은 순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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