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잠실=장강훈기자] 29년 만의 한(恨)을 드디어 풀어냈다. 모든 LG팬의 염원을 담아 나선 21년 만의 한국시리즈에서 보란듯이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선수들은 플레이 하나하나에 혼을 담았고, 벤치는 돌다리를 두드려 건너듯 세심하게 운영했다. 꼴찌에서 일등을 노리던 KT를 파트너로 맞이한 LG는 1차전 패배 뒤 내리 4연승을 따내 1994년 이후 29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1만5206일 만에 울려퍼진 ‘승리의 찬가’ 아래 LG 염경엽 감독도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LG가 1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KT와 2023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을 6-2로 이겨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역대 세 번째 통합 우승을 차지한 LG 선수단은 29년을 한결같은 응원으로 기다린 팬에게 큰절로 인사를 대신했다.

팀 트윈스의 숙원을 푼 명장으로 당당히 인터뷰룸에 들어온 염 감독은 목에 건 금메달부터 깨물었다. 생애 첫 ‘우승감독’ 타이틀을 거머쥔 기쁨, 29년 묵은 염원을 풀어냈다는 자부심이 장난스러운 미소에 묻어났다.

눈가가 촉촉히 젖은채로 “한국시리즈에서 함께 좋은 경기 펼쳐전 KT 이강철 감독님과 선수단에 경의를 표한다. 우리 팬들 정말 오래 기다렸다. 기다림 속에 한결같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선수들에게 우승이라는 절실함을 만들어 주셨다. 그 절실함으로 따낸 우승”이라고 말했다.

1994년에는 상대팀 선수로 LG 우승을 지켜봤고, 올해는 수장으로 챔피언 트윈스를 이끌었다. 염 감독은 “당시에는 지키는 야구를 못해서 분루를 삼켰다. 그런데 올해 2선발이 없어서 힘든 시리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2차전에서 젊은 불펜진이 한 점도 빼앗기지 않고 버텨준 덕분에 박동원의 홈런으로 역전했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2차전 승리로 우승하겠다고 생각했고, 3차전 재역전승으로 확신했다. 승운이 우리에게 왔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염 감독이 꼽은 시리즈 MVP는 투수진을 훌륭하게 이끌어준데다 시리즈 판세를 LG쪽으로 끌어온 박동원이다. 요소요소에서 튼튼한 허리 역할로 버팀목이 된 신인 유영찬도 ‘감독스 픽’. 우승상금 1000만원을 내건 염 감독은 “(박)동원이는 프리에이전트(FA)로 돈 많이 벌었으니, 500만원을 빼앗아 (유)영찬이에게 주겠다. 영찬이는 이닝을 끌어가는 데 숨통을 트이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감사인사했다.

모두가 ‘우승할 것’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본 팀이어서 부담이 컸던 게 사실. 염 감독은 “사실 엄청 부담됐다. 부담감 안고 시작한 시즌이었다. 4,5월 선발 붕괴, 필승조 붕괴됐을 때 잠을 못잤다. 그때 타선이 터져주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줬다. 젊은 승리조가 버텨주면서 4,5월 넘긴 게 우승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돌아봤다.

그는 “시리즈 시작하면서 우승에 대한 절실함과 열정은 어느 팀에도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절실함과 열정이 잘못되면, 조급함으로 변할 수 있다. 그래서 기본기와 차분함을 계속 강조했다. 모든 플레이를 침착하게 하나씩 하자는 얘기를 많이 했다. 오늘(13일)도 경기 전에 약간 흥분한 상태여서 다운시키려고 엄청 노력했다”며 웃었다.

도망치듯 LG를 떠났다가 우승 감독으로 화려하게 재기한 염 감독은 “선수들이 나에게 힘을 줬다. 프런트가 믿음을 줬다. 현장에서 신뢰를 주면서 믿어준 게 지금의 좋은 성과를 만들었다”며 “통합우승으로 우리 선수들이 더 큰 자신감과 단단함이 생겼다. 신구조화 잘된 팀이다. 이번 우승은 트윈스가 강팀, 명문구단으로 도약하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으로 생각한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한을 풀어내자 탄탄대로가 보이기 시작한 LG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