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 기자] “인기를 위해 살지 않았어요. 연기를 하다 보니 사랑과 관심을 받고, 책임감이 생겼죠. 그런 점들이 제 작품 선택의 기준이 됐어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의 주연배우 박서준은 작품과 관련해 “왜 이 작품을 선택했냐”는 질문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다만 파트1과 파트2 공개 뒤 질문의 뉘앙스가 미묘하게 달랐다.

파트1이 공개됐을 때는 “톱스타 박서준이 왜 이렇게 만듦새가 아쉬운 작품을 택했냐”는데 방점이 찍혔다면 파트2 공개 뒤에는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는 톱스타 박서준인데 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독립군을 지원하는 역할을 연기했냐”는 뜻으로 의미가 변했다.

박서준은 그때나 지금이나 당당하고 여유있었다. 그는 “파트1 공개 뒤 혹평이 많았지만 특별히 신경쓰지 않았다”며 “지금껏 출연한 작품들 모두 평단의 호불호가 나뉘었고 호평과 혹평이 양분됐다. 콘텐츠에 출연하는 입장에서 시청자나 관객의 다양한 해석이 관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성크리처’는 광복을 앞둔 1945년, 일제가 경성의 한 병원에서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통해 괴물(크리처)을 만들어내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실제 조선인 포로들을 ‘마루타’(통나무)화 해 생체실험을 벌인 일본 731부대가 모티프다. 박서준은 극중 조실부모 뒤 자수성가해 일제 치하 경성에서 가장 큰 전당포 금옥당을 운영하는 장태상을 연기했다.

‘경성크리처’ 출연을 결심한 건 정동윤PD와 강은경 작가, 두 스타 제작진의 적극적인 러브콜의 힘이 컸다. 더불어 시대극과 크리처물의 결합이라는 색다른 요소도 한몫했다.

“첫 미팅 때 제작진이 프리젠테이션을 잘 준비해오셨어요. 드라마에서 아직 보여드리지 않은 뒷이야기가 4~5배쯤 압축됐죠. 배우로서 늘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시대극이고 크리처물이라는 점에서 욕심나는 작품이었어요.”

그렇다고 해도 박서준의 일본 내 인기를 생각하면 의외의 선택이다. 그는 지난 2020년 출연한 JTBC ‘이태원 클라쓰’가 넷플릭스를 통해 송출되면서 글로벌 스타덤에 올랐다.

‘이태원 클라쓰’는 특히 일본에서 사랑받았다. 일본의 인기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한국청춘 버전 같다는 찬사를 받으며 ‘롯폰기 클라쓰’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일본 팬들의 눈치를 보느라 출연을 망설일 수 있지만 박서준은 “우리 민족이 이런 아픔을 겪었다는 걸 몰랐던 이에게 알릴 수 있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그간 한일 관계 때문에 경성 배경 드라마 제작이 드물었다고 해요. 그러다보니 경성 배경 세트도 없어서 제작비도 높았죠. 일본 팬 분들 중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만두 CF’ 보기 싫다는 말 외에는 특별한 반응은 보지 못했네요.(웃음)오히려 주변 분들이 저보다 더 걱정해주셨죠. 다행히 소속사는 제 의견을 존중해주셨어요.”

박서준의 결단 덕분에 ‘경성크리처’는 일본 넷플릭스에서도 주간 시청 뷰 10위 안에 2주 연속 이름을 올렸다. 글로벌 호평에 힘입어 시즌2 제작도 결정됐다. 박서준은 “시즌1과 시즌2의 색깔이 다르다. 시즌1을 먼저 보면 드라마 전개의 이해가 더 쉬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박서준은 지난해 누구보다 바쁜 한해를 보냈다. 팬데믹 기간 개봉하지 못했던 영화 ‘드림’이 4월 개봉한데 이어 8월에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다시금 관객을 만났다. 11월에는 첫 할리우드 출연작인 ‘더마블스’가 개봉했다. 안타깝게도 할리우드 배우조합 파업여파로 홍보활동은 전혀 참여하지 못했다.

“처음 캐스팅 제안을 받았을 때 언어의 제약 때문에 망설였죠. 하지만 니아 다코스타 감독은 언어는 중요치 않다며 제 연기력을 높이 사 용기를 냈어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촬영기간과 겹쳐 촬영이 없는 날 안무연습을 했고 팬데믹 시기라 매일 검사를 받으며 어렵게 촬영을 마쳤어요. 비록 분량은 적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인사드릴 수 있는 기회였는데 배우조합 파업 때문에 내내 기다리라고만 하더라고요. 결국 홍보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어요. 하하.”

2023년은 그에게 기다림의 의미를 깨우쳐주기도 했다. ‘드림’과 ‘더마블스’, ‘경성크리처’ 모두 지난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작품을 통해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나갈지 배웠죠. 촬영을 다하고 공개되기까지 시간은 아쉬움과 새로운 출발이 교차되는 시간이죠. 관객과 시청자 앞에서 선보인 작품을 보며 과거를 회고하는 시간도 의미가 남달라요. 저는 그 시간이 소중하고 좋더라고요. 조급해하기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해요.” mulga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