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의 영어 제목은 ‘어 킬러 패러독스(A Killer Paradox)’다. 살인자의 역설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인생에 단 1초라도 빛나는 순간이 없었던 20대 청년 이탕은 좁은 자취방에서 비루한 삶을 살고 있다. 학교폭력을 당하는 와중에도 반격은 선택지에 없었던 이탕(최우식 분)은 술에 취해 자신을 공격하던 남성을 망치로 때려죽였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그때 장난감(손석구 분) 형사가 찾아왔지만, 이탕은 묘하게도 용의선상에서 제외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탕은 계속해서 의도치 않은 살인을 저지른다. 경찰에 자수하려는 찰나, 이탕이 죽인 이들이 살인, 성폭행, 보험 사기 등 인간으로서는 자행할 수 없는 최악의 악을 저지른 악인이라는 게 밝혀졌다. 놀랍게도 국립과학수사대는 이탕을 향한 증거를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를 때 천재 해커 노빈(김요한 분)이 찾아왔다. 그는 이탕이 불세출의 히어로라며 함께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다. 그때부터 난폭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찾아가 연쇄살인을 시작했다. 누가 봐도 용서할 수 없는 인간들만 골라 죽이자 대중은 다크히어로를 응원했다. 살인자를 응원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동명 웹툰을 실사화한 ‘살인자ㅇ난감’은 편집이 상당히 눈에 띈다. 영화 ‘사라진 밤’(2018)으로 데뷔해 OCN ‘타인은 지옥이다’(2019)로 호평받은 이창희 감독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초반부터 느끼게 한다. 만화적인 색감과 어딘지 큰일이 터질지 모르는 어두운 정서를 그대로 살리는 동시에, A장면에서 B장면으로 교묘하게 넘어가는 점프 컷을 활용해 시청자의 몰입을 높였다.

강아지처럼 뛰던 이탕이 갑자기 망치를 들고 여성을 때리는 장면을 느린 화면으로 표현하거나, 자살하려고 목을 맨 이탕과 장난감에 이끌리는 훈련견의 끈으로 이어지는 장면, 훈련견 테스트를 받던 강아지와 분노에 찬 장난감이 교차하는 대목 등 편집만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그러면서도 곳곳에 메타포를 심어 넣었다.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된 카메라컷을 바탕으로 연출진이 심혈을 기울인 편집, 달파란 음악감독이 고심해서 선정한 드라마 결에 맞는 음악, 사건과 사건이 배턴터치를 하듯 빠르게 이어지는 과정에서 영화적 아이디어로 웹툰의 빈 곳을 채우는 점 등 장점이 많은 작품이 나왔다.

어수룩한 인상의 최우식은 다크히어로가 되면서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이탕 역으로 영화 ‘기생충’(2019)을 뛰어넘는 인생 캐릭터를 만들었다. 별생각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편의점 알바생에서 악인들에게 사적 복수를 감행하는 다크히어로의 두 가지 색감을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작품마다 강렬한 인상을 풍긴 손석구는 촉은 누구보다도 좋지만, 그 감을 인정받지 않아 수사에 난항을 겪는 데다 부모와 관계에서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진 장난감을 그려냈다. 초반부 나른한 듯 툭툭 내뱉는 대사와 특유의 아우라로 드라마의 분위기와 색채를 만들어냈다.

옳지 않은 방법이지만 목적은 훌륭한 연쇄살인마 이탕과 형사로서 능력은 출중하지만, 비인간적인 행동을 보이는 장난감의 대립에서, 어느 한쪽 쉽게 손을 들어줄 수 없다. 한 인물에 쉽게 이입할 수 없는 불안감이 긴박감으로 변화된다. 끝까지 쫄깃쫄깃한 느낌을 주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수많은 비밀을 가진 송촌 역의 이희준은 옛날 사람의 이미지를 독특하게 만들었다. 연극적인 톤을 바탕으로 광기에 사로잡힌 눈을 그려냈다. 송촌이 등장하면서 드라마는 마치 후반전에 돌입한 듯 색다른 색을 내며 달려갔다. 마지막까지 강렬한 힘으로 극을 휘몰아친다.

의외의 발굴은 노빈 역의 김요한이다. 영화 ‘방자전’(2010)의 송새벽을 연상케 하는 독특하고 일관된 연기가 강렬하다. 김요한은 영화의 메시지를 가장 직설적으로 던지는 노빈을 실감 나면서도 재기발랄하게 그려냈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에서 만날 배우로 여겨진다.

지나치게 경찰이 무능하게 그려지고, 이탕이 잡힐 뻔한 위기가 없어 긴장감을 조성하지 못한게 옥에 티다. 그러나 대세에 지장을 주진 않는다.

후반부 송촌과 장난감 사이에 담긴 비밀이 풀어지는 대목에선 왜 이 드라마 ‘살인자 역설’이라는 영문 제목을 붙였는지 단숨에 이해된다. 단순히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서사적 재미뿐 아니라 사람 간의 관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