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글·사진 | 철원 = 이주상 기자] 민초를 구하지 못한 아쉬움일까?

조선 명종 때 세상을 서늘하게 한 임꺽정은 하늘을 이고 있는 아틀라스처럼 세상의 두 기둥을 붙들고 포효하고 있었다.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고석정은 ‘의적’ 임꺽정의 정신적 고향이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지형적 특징을 가지고 있는 철원군은 평야 속에 협곡이 있고, 협곡 속에 수많은 강과 지류가 흐르는 곳이다. 임꺽정이 은신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한탄강의 거센 물결 속에 우뚝 선 암벽이 고석 바위다. 인근에 정자가 있어 고석정이라 부른다. 통칭 이 일대를 ‘고석정’이라 부르고 있다.

임꺽정은 조선 명종 때 활동했던 도적이다. 임꺽정은 홍길동, 장길산과 더불어 소위 ‘조선시대 3대 도적’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름만 도적이지 민초들을 구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 ‘의적’으로 불리고 있다. 임꺽정은 여러 차례 관군과 맞붙어서 이겼을 뿐만 아니라 거의 한 나라를 뒤집어엎을 만큼 기세가 대단했다. 임꺽정이 활동했던 명종 대는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고 그 동생인 윤원형이 권력을 장악하고 부정부패와 전횡을 일삼던 시절이었다. 그 영향으로 관리들이 부패해 민생이 극도로 어려웠던 시기였다. 이런 때에 임꺽정이 나타난 것이다.

임꺽정은 고석정에서 군사들을 훈련하며 탐관오리들을 징벌했다. 절벽에 둘러싸인 곳이라 찾기도 어렵거니와 관리들이 쳐들어와도 방어하기에 좋은 곳이다. 비록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정신은 살아남아 이제 고석정은, 철원군은 그를 대표하는 곳으로 거듭났다. 서울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고석정은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으며 ‘고석정 국민관광단지’로 재탄생했다.

고석정 국민관광단지에 오면 우선 하늘을 호령하는 장대한 임꺽정이 동상이 먼저 반긴다. 동상은 부패한 권력과 양반 사회를 문고리에 단 두 기둥으로 상징화하여 이를 박차고 나와 무너뜨리면서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려는 의지를 역동적으로 표현했다. 절벽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지나면 고석 바위가 위용을 자랑한다. 화산 시대에 형성된 암벽은 강 위에 떠 있는 모습처럼 보여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느낌이다. 고석 바위를 둘러싼 지층은 화강암과 현무암이 공존하는 등 다양한 지질의 역사를 보여준다.

활발한 화산활동으로 생긴 거대한 용암은 한탄강을 탄생시켰고, 한탄강의 세찬 물줄기는 지금의 협곡을 만들었다. 수십만 년 동안 이어진 결과다. 고석정은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 1971년에 다시 세워졌다. 고석 바위에는 임꺽정이 위급할 때 몸을 숨긴 동굴이 있는 등 신비로움도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서 임꺽정은 석성을 쌓으며 계급사회를 타파하기 위해 애를 썼다. 비록 그의 꿈은 42세에 끝났지만, 정신만큼은 한탄강처럼 지금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

암벽 사이로 굽이치는 물결은 거칠기만 하다. 지형적 특성으로 숱한 바위가 물속에서, 물 바깥에서 마주하기 때문에 소용돌이는 치는 모습을 자주 본다. 전에는 숨을 죽이며 항해해야 했지만 이제는 래프팅의 명소가 돼 전국에서 젊은 피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또한 작고 단단한 유람선은 관광객들을 수많은 전설이 서린 암벽으로 안전하게 안내하고 있다. 고석정 인근에는 소망을 담은 수많은 돌탑이 산재하고 있다. 임꺽정이 못 이룬 꿈에 대한 아쉬움을 대신하기 위해 수많은 돌탑이 만들어졌다. 지금도 돌탑에는 돌이 얹어지고, 새로운 돌탑이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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