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묘한 관계가 형성됐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 형사가 살인범을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다. 악질 살인범에게 200억원의 현상금이 걸렸기 때문이다.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흉악범이지만, 인권 때문에 경찰이 그를 지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달 31일 U+ 모바일과 디즈니+에서 공개된 ‘노 웨이 아웃: 더 룰렛’(이하 ‘노 웨이 아웃’)의 주요 줄거리다. 경찰 백중식은 조진웅이, 흉악범 김국호는 유재명이 연기했다. 서로의 뛰어난 연기력을 존중하는 두 배우가 경찰과 흉악범으로 만나 질감이 있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조진웅은 “200억원의 현상금이 걸린 흉악범을 보호하는 경찰이라는 설정이 매력적이었다.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궁금증을 자극했다”고 말했다. 유재명은 “도롱뇽 아버지로 시작해서 살인마라는 최전선까지 왔다. 계란을 던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빛을 연기하고 싶은 욕망이 컸다. 악마성이 열리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조진웅 “급작스럽게 준비한 작품, 변명 따윈 없다”

조진웅에게 ‘노 웨이 아웃’은 특별한 작품일 수밖에 없다. 기존에는 故 이선균이 참여하기로 했는데, 부정적인 이슈와 맞물려 갑작스럽게 하차하게 됐다. 경찰로 늘 믿음을 선보여준 조진웅에게 기회가 갔다.

“어쩔 수 없이 빨리 준비했어요. 당황스러웠죠. 황급히 대본을 봤어요. 술술 읽히더라고요. 제작사에도 슬하에 딸린 식구들이 많잖아요. 제 결정으로 인해 엎어질 수도 있었죠. 그러면 선균이형을 더 욕되게 하는 거고요. 각오를 강하게 했죠. 형이 ‘너가 해줘서 든든하고 고맙다’고 문자를 보내줬어요. 현장은 뜨거웠고 다 날아다녔어요. 팀워크가 생겼죠.”

“조진웅의 경찰은 늘 옳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영화 ‘끝까지 간다’(2014)를 시작으로 tvN ‘시그널’(2016), 영화 ‘독전’(2018), ‘경관의 피’ 등에서 경찰을 연기했다. 늘 선이 굵었다. 이번에 다르다. 목적이 범인보다는 생계와 가족, 삶에 있다.

“누가 ‘또 경찰이에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고개를 못 들었어요. 경찰 하는 게 죄는 아닌데. 용산경찰서 형사랑 친해요. 한 형사님은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 방범창을 설치하는데 싼 거 하려고 고심하더라고요. 그것도 경찰의 얼굴이거든요. 백중식은 인간적인 경찰이에요. 가족과 삶에 더 충실하죠.”

작품이 주는 만족감은 동료 배우들이 더 키웠다. 유재명을 비롯해 염정아, 김무열, 김성철, 이광수 등 훌륭한 배우들이 빈틈없이 이야기를 채웠다.

“리딩할 때부터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하나 같이 연기를 다 잘하나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한 인고의 과정이 다 보였어요.”

◇유재명 “흉악한 거로는 최민식 못 이긴다”

1997년 극단 ‘열린무대’에 입단, 연극 ‘서툰 사람들’로 데뷔했다. 13년 만에 상경했고, 1988년 처음으로 tvN ‘응답하라 1988’로 TV 연기를 시작했다. 영화 ‘바람’에 단역으로 출연한 덕분이었다. 이후 tvN ‘비밀의 숲’에서 엄청난 연기를 선보였고, 창작자 사이에서 뛰어난 연기자로 정평이 났다.

“스무살 때 연극이란 걸 접하고 눈 떠보니 지금 나이가 됐네요. 왜 이렇게 일에 매진하고 살았을까 싶어요.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아요. 연기도 그다지 잘하지 않았는데, 노력하다 보니 좋은 캐릭터를 많이 만나게 됐어요. 연기는 비결이 없는 것 같아요. 이번에 살인마를 하게 돼서 사실 상당히 기뻤습니다.”

김국호는 혐오스러운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면 더욱 감정을 넣을 법한데 힘을 뺐다. 담배 필 때 추위에 온몸을 굽히는 초라한 모습도 보여준다. 오히려 더 실존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이 역할을 제일 잘 만들고 싶었죠. 범죄자가 대략 떠오르기도 하잖아요. 연쇄살인범은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최민식을 넘어설 순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다른 방향의 악마성을 보여주려고 했죠. 혐오감을 주려면 오히려 더 고급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실존하는 범죄자가 되길 바랐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