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스피싱 조직, 아파트 실태 조사 업무 위장해 취업 유인

■ 재판부 “보이스피싱 조직의 치밀한 수법에 속아”

[스포츠서울 | 김수지 기자]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현금 수거책으로 활동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이 무죄를 선고받아 주목받고 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단독(박희근 부장판사)은 지난 6월24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40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5월 보이스피싱 피해자 2명으로부터 수표 1억 500만원을 건네받고, 이를 2차 수거책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았다.

평소 앓던 지병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오랜 기간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던 A씨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했다.

A씨는 한 회사 관계자로부터 부동산 실태 조사 업무를 제안받아 근로계약서를 체결했고, 실제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수당을 받았다.

이후 A씨는 아파트 계약금을 회수해달라는 추가 지시를 받았고, 해당 장소를 찾아 수표가 든 봉투를 수거한 뒤 이를 다른 수거책에 전달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증빙자료 없이 수표를 건네받고 이를 타인에게 건네준 정황을 보면 사기의 고의를 의심할 만하다”라면서도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조직과 공모했다거나 사기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또 “피고인이 상당 기간 아파트 조사 업무를 수행한 점과 범행 직후 이상함을 감지하고 경찰서를 찾아간 경위 등을 보면 피고인 역시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보이스피싱 조직의 교묘한 수법에 속아 수거 행위를 했다고 볼 여지도 많다”라고 덧붙였다.

해당 사건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유한) 대륜 박성동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범죄에 연루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힘들 정도로 그 수법이 지능화·고도화되고 있다”라며 “억울하게 사건에 연루됐어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돼 처벌받는 사례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피고인 스스로 자신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정황이 상세히 입증돼 무죄 판결로 이어졌다”며 “보이스피싱 수거책의 경우 ‘고의성’ 입증이 재판부의 유·무죄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sjsj1129@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