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인천=조은별 기자] 2017년, 린킨파크 보컬 체스터 베닝턴의 사망은 팬들에게 엄청난 상실과 우울감을 안겼다.

고인이 겪었던 지옥같은 성학대와 약물 중독이 외부로 알려졌고 밴드는 ‘원 모어 나이트’(One more night)로 고인을 추모했다. 하지만 팀이 지속성을 갖고 활동하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그만큼 베닝턴의 빈자리가 컸다.

긴 시간 침묵하던 린킨파크가 돌아왔다. 누가 베닝턴의 빈 자리를 대신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그들의 답은 성별의 전환이었다. 린킨파크가 새롭게 영입한 여성 보컬 에밀리 암스트롱은 밴드 데드 사라의 공동 보컬 출신이다.

린킨파크는 이와 더불어 신곡 ‘더 엠프티니스 머신’을 발표하고 월드투어를 통해 본격적인 ‘리빌딩’에 나섰다. 한국은 이번 투어의 유일한 아시아 국가다. 린킨파크의 내한 공연은 지난 2011년 이후 13년 만이다.

28일 오후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린 새 월드투어 ‘프롬 제로’(FROM ZERO)는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자리였다. 에밀리는 허스키하면서도 시원한 보컬로 단숨에 한국 팬들을 사로잡았다. 공연 전부터 ‘린킨파크’를 연호했던 팬들은 새로운 퀸의 대관식을 기꺼이 반겼다.

‘섬 웨어 아이 빌롱’부터 린킨파크의 메가히트곡 ‘넘’, ‘인 디 앤드’, ‘페인트’까지 자신만의 창법으로 재해석한 에밀리의 허스키한 음색과 산뜻한 포효는 베닝턴의 유산을 간직한 린킨파크의 새 출발을 알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밴드의 프로듀서이자 래퍼인 마이크 시노다의 녹슬지 않은 ‘현미경 랩’, 한국계 DJ 조한의 속사포 디제잉 실력도 관전포인트 중의 하나였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조한이지만 무대 중간 “여보세요”라는 한국어로 관객에게 깨알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7년의 침묵을 기다린 팬들은 이 무대의 또 다른 연출자이자 배우, 그리고 보컬이었다. 린킨파크의 전성기를 함께 한 엑스세대, Y2K열풍과 함께 린킨파크의 음악을 접한 MZ세대, 공항과 가까운 인스파이어 리조트 특성상 이곳에 숙박하는 외국인 관객 등 세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1만 4000여 관객이 열광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아재와 청년, 한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목청을 높여 린킨파크를 연호했다. 스탠딩존에서는 흥분한 팬들이 ‘슬램’(관객이 몸을 부딪히는 퍼포먼스)을 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페스티벌이 아닌 단독 콘서트의 ‘슬램’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때로 고음이 힘겨웠던 에밀리가 관객에게 마이크를 넘길 때마다 관객의 떼창이 부족함을 메웠다. 베닝턴, 에밀리를 잇는 린킨파크 제 3의 보컬이라 할 수 있다.

시노다는 공연에 앞서 진행된 아시아 컨퍼런스 미디어 콜에서 “에밀리는 체스터가 되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체스터의 레거시(유산)는 레거시대로 두고, 우리는 우리대로 또 다른 새로운 챕터를 쓰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시노다의 말대로 이들은 11월 15일 새 앨범 ‘프롬 제로’(FROM ZERO)를 발매한다. ‘제로’는 린킨파크의 전신이었던 밴드 이름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겠다는 밴드의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혼자가 아니다. 밴드의 귀환을 기다렸던 든든한 팬들이 전 세계 곳곳에 포진했기에 왕관의 무게 (‘헤비 이즈 더 크라운’(Heavy Is The Crown), ‘2024 리그 오브 레전드(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주제가)를 덜 수 있었다. mulga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