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인간은 필연적으로 결핍된 삶을 산다. 자신이 가진 결점을 다른 방향으로 바꿔내거나 콤플렉스로 남기거나 둘 중 하나다. 영화 ‘전,란’은 이처럼 인간의 내밀한 부분을 끄집어냈다. 전란(戰亂)이란 극한적 상황으로 이를 증명했다. 친구가 된 양반 이종려(박정민 분)와 노비 천영(강동원 분)이 양천제 신분 질서를 뛰어넘을 수 있던 건 서로가 가진 결점 때문이었다.

종려는 무과에 급제할 만한 검술 실력이 없다. 종려 대신 대리시험을 치고 무과급제를 한 천영은 면천(免賤)을 꿈꾸지만 결국 실패한다. 둘 처지는 곤궁하다. 끌림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서 생성된다. 서로 다가가려 애쓰다 파국을 맞는다. 고대 비극에 빗댈 만하다.

종려 역을 맡은 박정민이 둘의 관계를 ‘로미오와 줄리엣’에 빗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정민은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가진 넷플릭스 영화 ‘전,란’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셰익스피어 작품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연기하라 했다. 둘 사이가 그런 느낌이 들었다”며 “종려가 천영에게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기에 로미오 쪽에 가깝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란’은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인한 ‘전’(戰)이, 7년 전쟁이 끝난 후 무능하고 무책임한 선조를 향한 원망이 ‘란’(亂)으로 이어진다. 둘은 ‘전’에선 왜구를 향해, ‘란’에선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눈다.

천영 손등으로 향한 첫 번째 칼은 목으로 가지 않기 위함이었다. 도망갔다 잡혀 온 천영을 죽이지 않으려 아비 대신 칼을 잡는다. 박정민은 “천영을 검으로 내려찍을 때 종려가 나쁜 놈인가 생각했다. 이걸 어떻게 나쁘게 표현할까 하다가 분노가 아니라 답답한 감정인 걸 깨달았다”며 “자기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슬픔이었다”고 말했다.

애틋한 마음이 묻어나왔기에 ‘브로맨스’ 이야기까지 나왔다.

“하나의 작품 나왔을 때 여러 이야기 나오는 것은 행운이죠. 관객들이 둘 관계를 로맨스로 본 것도 맞아요. 촬영하면서 가끔 이상한 느낌이 들기도 했거든요. 천영 얼굴을 손으로 잡고 말할 때는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이상한 공기를 느꼈거든요(웃음). 과해석이 되진 않게 수위 조절을 하면서 연기했어요.”

영화는 7년간 전쟁 이야기를 생략한다. 대신 두 인물 서사에 집중한다. 왜란에서 공을 세운 천영은 또 다시 신분 상승을 마음에 품는다. 동지들이 역도로 몰리며 계획은 산산조각 난다. 집안이 불타며 일가족이 몰살당한 종려는 이것을 천영이 세운 계략으로 오해한다. 이때 일그러지는 표정은 두 번째 칼이 천영 목을 겨누겠단 선언이다.

“특권 의식 가진 사람으로 돌아오는 모먼트라고 생각했어요. 풀어줬더니 ‘내 가족을 몰살해 버리네’ 이런 생각을 했죠. 어쩔 수 없는 양반이구나 싶었어요. 천영과 나눈 우정을 호의라고 느낀 거라고 해석했어요. 천한 것에게 마음을 줬더니 이렇게 배신했구나.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강동원이 사석에서 가장 작업하고 싶어 했던 배우가 박정민이었다. 오히려 박정민은 “현장에서 넋 놓고 구경하게 되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외형이 갖고 있는 기운과 에너지가 많다. 액션을 하면 입이 안 다물어졌다”며 “보통은 제가 천민을 하는 게 맞겠지만 제가 양반을 해서 더 재밌어진 거 같다”고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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