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여성 중심 서사로 시대적 의미를 곱씹고 있는 드라마가 나와 나란히 주목받고 있다. 엄마가 뜯어말린 ‘소리’에 도전한 tvN ‘정년이’와 금기시한 성(性) 관념을 깨부수는 JTBC ‘정숙한 세일즈’에 시청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여성 서사라서가 아니다. 천대시한 직업을 가진 인물이 편견과 맞서는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이 곱씹을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년이’가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 1956년은 여성 명창 지위가 낮았을 때였다. 노래 잘하는 기생이라는 천대시한 인식을 깨기 위해 시작된 게 바로 여성국극이었다. 10년 남짓한 기간동안 반짝하고 맥이 끊긴 국극과 그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소리꾼 이야기에 대한 결합이 신선함을 더하고 있다.

지난 12일 첫 방송을 끊은 ‘정년이’는 타고난 소리꾼 자질을 갖춘 정년(김태리 분)이 매란 국극단 스타 문옥경(정은채 분)를 만나며 국극 단원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고향 전남 목포에서 생선을 팔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다 천구성(天狗星·하늘이 내린 소리)을 발견하면서 소리에 눈을 뜬다.

김태리 연기도 압권이다. “소리 연습만 3년을 했다”는 말처럼 구성진 타령이 일품이다. 남도 특유의 꺾기를 맛깔나게 구사하며 단순히 흉내 내는 수준을 넘어섰다. 국극이란 신선함도 감칠맛을 더한다. 정년이와 경쟁을 펼치는 허영서(신예은 분)와 신경전도 기존 남성 중심 서사에서 주로 보던 성별 전복의 모습이다.

정년이는 매란 국극단에서 추가 합격생인 보결로 들어와 갖은 시샘을 받는다. 소리는 갖췄지만 해보지 못한 서툰 연기에 놀림을 받는다. 춘향전에서 이몽룡과 합을 이뤄야 하는 방자 역을 덜컥 맡게 됐다. 알을 깨고 나올 정년이 성장이 주목된다. 국극 스타로서 찬란하게 뻗어나갈 서사의 시발점이 될 전망이다. 이런 기대감에 1회 4.8%에서 8.2%까지 2배가량 뛰며 돌풍을 일으킬 조짐을 보인다.

같은 날 방송을 시작한 ‘정숙한 세일즈’는 성인용품 방문판매로 빚어지는 일을 다룬다. 시대적 배경은 1990년대다. 성에 대한 폐쇄적 인식이 팽배했던 당시 드라마는 성(性)이 금기시되던 시대를 다룬다. 주목되는 건 정숙(김소연)의 성장이다. 남편 성수(최재림 분) 불륜 현장을 목격하고도 제대로 된 항의조차 못하던 인물이 ‘방판 씨스터즈’와 함께 자립, 성장, 우정을 나누며 변화한다.

드라마 초반, 정숙이 처한 모순된 지점을 비춘다. “자기 부인 빼고 다 예뻐 보인다”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던 시절, 다른 부부의 활발한 성생활을 위해 성인용품을 팔아야 하는 정숙의 처지는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몸매가 드러나는 슬립을 입고 방판을 하는 ‘방판 시스터즈’가 보여주는 모습은 초기 홈쇼핑을 보는 듯한 재미도 선사한다. ‘남사스럽다’며 멀리하던 여성들이 속옷에 관심을 갖고 자기만족을 위한 자위 기구까지 사게 되는 시대적 교차점은 현재와 다른 과거라는 점에서 복기해 볼 지점을 던진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여성서사를 가진 드라마가 이렇게 등장한 게 불과 지난 몇 년밖에 되지 않는다”며 “과거 자기 목소리를 낸 여성을 가진 의미를 현대적으로 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두 드라마 모두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