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퉁소’ 소리가 이렇게 구슬펐던가. 깊어져 가는 밤 초롱불 아래에서 사랑하는 이와 시를 읊던 날이 생사(生死)조차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돼 가슴에 사무친다.

세종문화회관은 2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서울시극단 연습실에서 프레스콜을 열고 개막에 앞서 작품 진행 과정을 소개했다.

서울시극단의 올해 피날레 작품인 연극 ‘퉁소소리’는 고전소설 ‘최척전’의 미덕을 고선웅 연출 특유의 유머와 리듬감을 더해 재탄생한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150분 동안 30년의 방대한 서사를 이야기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명청교체기의 전란 속에서 피어난 강한 가족애를 전한다.

무대는 거문고, 가야금, 해금, 퉁소와 타악기 등 전통 국악기의 라이브 연주로 감정선을 폭발시킨다.

고 연출은 “대청마루에 앉아 연기 속에서 펼치는 거친 연극”이라며 “현시대에서 연민이 무심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연민은 고통을 딛고 여전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다”고 소개했다.

◇ 구슬픈 울 ‘퉁소’…인연은 돌고 돌아 다시 만나는 법

‘퉁소소리’가 세상에 선보이기까지 1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강박관념으로 인해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는 고 연출의 후담이다.

조선에서 시작해 일본, 중국, 베트남까지 넘나드는 장황한 이야기를 한정된 공간에서 표현해야 했다. 또 어두운 주제를 밝게 표현하는 데 있어, 저렴해 보이지 않으면서도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작업이 필요했다.

‘퉁소소리’는 조선시대 외세 침략에서 살아남은 ‘민초’들의 삶도 그린다. 무력 침략에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고 생이별했던 시간. 작품에서는 어떻게든 살아서 사랑하는 이들과 재회하는 꿈을 그린다. 조선에서 각자 일본과 중국으로 넘어가 먼 베트남에서 다시 만나기까지의 그리움과 한(恨)을 퉁소 연주와 함께 구슬프게 노래한다.

고 연출은 연극에서 다루는 시대적·공간적 배경에 대해 “파병, 전쟁, 폭격, 난민캠프 등 과거와 현재 상황이 같다”며 “역사는 반복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1500년대 역사가 돌고 돌아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살아있는 사람만의 기억”이라고 설명했다.

◇ 배우 전원 오디션 통해 캐스팅…믿기지 않는 신호탄

‘퉁소소리’를 무대에 올려야겠다고 작심했을 때 세종문화회관, 서울시극단과 빠른 이해관계가 이뤄졌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극본도 반년 만에 완성하는 등 순조롭게 행진을 이어갔다.

배우 14명 모두 오디션을 통해 캐릭터에 가장 적합한 인물들을 선발했다. 작품 속 역할의 삶,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 시각적 효과 등을 완벽하게 소화해낼 배우의 힘을 원했다.

500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이 중에는 극단 산수유 대표이자 연출가 류주연도 있었다. 그는 “나에게 맞는 옷을 입고 싶어 도전하던 중 오디션 소식을 들었다. 고선웅 연출과 작품 스타일은 다르지만, 워낙 유명한 연출가이지 않은가”라며 “나 자신을 홍보하고자 과감하게 오디션에 도전했다. 단역이지만, 1인 10역 이상을 소화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영민은 원래 조연으로 오디션을 봤다. 하지만 고 연출의 예리한 시선을 뚫고 가능성을 증명해 주인공 ‘최적’ 역을 따냈다. 그는 “최종 합격 발표를 듣고 다음 날 오전까지 꿈꾸는 것 같았다. 나도 1인분 하면서 어느 정도 빛날 수 있지 않겠냐는 감사한 마음으로 연습에 임하고 있다”고 했다.

고 연출이 “보석 같은 배우”라고 소개한 ‘양 씨’ 역 이승우는 30년 만에 북 치고 장구 친다. 연극이 아닌 국악을 전공했다는 그는 “악기는 또 다른 언어라고 생각한다. 배우는 그 배역을 맡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기회를 받았으니, 그때 기억을 되살려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고 연출은 “정말 매력적인 배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함께하고 있는 배우들은 독보적이었다. 텐션이 있으면서도 릴렉스 돼 있다”며 “어느 배역, 장면에 넣어도 평화롭게 해주는 캐릭터다. 캐스팅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퉁소소리’는 11월11일부터 2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노(老)최적’ 역 이호재, ‘최적’ 역 박영민, ‘옥영’ 역 정새별 등이 무대를 이끈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