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배우 박서윤은 물론 소속사 관계자 아무도 예상을 못 했다. 박서윤이 영화 ‘허밍’으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받을 거라는 건 예상 밖이었다. 분량이 많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인상 깊을 만한 감정신도 없어서다. 서로 ‘왜?’라고 물었다.

출연한 영화가 ‘한국 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돼 부산을 만끽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 생각했는데, 더 큰 기쁨이 찾아온 셈이다. 심사위원이 배우 김선영이라는 데 힌트가 있다. 김선영은 국내에서 가장 현실감 넘치는 연기를 펼치는 배우 중 하나다.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게 존재해왔다. 박서윤 역시 ‘허밍’ 속에서 활달한 고등학생 미정으로 존재했다. 담담히 그려내는 연기법이 김선영의 눈에 걸려든 셈이다.

박서윤은 서울 중구 스포츠서울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다만 아버지가 동네에 큰 현수막을 걸었다. 가족이 응원하는 게 피부로 와닿는 정도”라며 “김선영 선배는 제가 닮고 싶은 배우였다. 진한 감정을 표출하지도 않았고, 카리스마도 없었는데 상을 받아 놀랐다. 김선영 선배께선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 같았다’고 해주셨다. 담백한 연기를 추구했는데 그걸 잘 봐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허밍’은 영화 한 편의 후시 작업을 맡은 녹음기사의 현실과 회상이 교차한다. 고등학생 미정(박서윤 분) 대신 새로운 목소리를 입히기 위해 찾아온 단역 배우와 작업하는 과정에서 미정을 떠올리는 녹음 기사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았다. 미정은 자연재해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인물이다. 실재하진 않는 녹음 기사의 기억에만 남은 인물이다.

“대본에서 본 미정은 조선시대 규수처럼 티 없이 맑은 아이였어요. 저랑 성격도 안 맞는 것 같았어요. 활달한 제 모습을 담았어요. 조금 더 통통 튀고 싶었거든요. 저만의 색을 입혀보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잘 받아주셨어요. 미정인 어머니로부터 심하게 통제받는 친구인데요. 우울감이 있어도 밝을 거라 생각했어요. 상을 받고 보니까 ‘더 잘 할 수 있었는데’라는 아쉬움이 남아요.”

작품 속에서 박서윤은 굳이 애써 연기하지 않는다. 웃을 때도 울 때도, 가만히 말할 때도 힘을 슬그머니 뺀 채 표현했다. 목소리에 힘을 준다거나, 표정을 과하게 짓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미정을 표현했다.

“이 상을 계기로 조금은 제게 기회가 생길 것 같아 감사해요. 앞으로 찾아올 기회를 이 악물고 잡아야 할 것 같아요. 괜히 상상만 해도 도파민이 터지는 것 같고 기뻐요.”

초등학교 5학년, 박서윤과 연기의 만남은 ‘아빠 친구 아들’에서 시작됐다. 그야말로 연기학원에 ‘찍먹’ 하러 갔다가 강렬한 재미를 느낀 것. 1년 이상 부모님을 졸랐지만, 반대가 완강했다. 13세가 되던 해엔 진지하게 부모님을 모시고 ‘등록만 해달라’며 간절히 호소했다.

“처음 연기학원에서 세 시간 동안 심장이 엄청나게 뛰었어요. 요즘 단어로 치면 도파민이 터진 거죠. 피가 확 도는 게 느껴졌어요. 그때 연기다운 연기를 한 건 아니겠지만, 정말 즐거웠어요. 여전히 촬영장이 행복해요. 감독님, 동료 배우, 다른 스태프들이 자기 분야의 이야기를 막 하잖아요. 듣고 있으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어요. 미장센이 뭔지 왜 카메라를 여기에 두는지 알면 머리를 ‘탁’ 치면서 깨달아요. 저에겐 정말 매력적인 순간이에요. 그런 분들과 계속 일하고 싶어요. 그래서 계속 잘하고 싶어요.”

배우는 관찰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연기할 수 있는 인물에 보편적인 인간성을 부여하는 게 배우의 기술 중 하나다. 박서윤도 숨 쉬듯 관찰한다고 했다. 인터뷰하는 기자를 관찰했다. 만성 피로를 들켰다.

“눈을 굉장히 많이 깜빡이시고요. 고개를 자주 움직이세요. 집중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피곤해 보여요. 어제 술 많이 드셨다고 들었어요. 눈은 저를 보는데, 손가락은 끊임없이 움직여요. 능숙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죠?”

아직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나름 대작 출신이다. 2019년 독립영화계를 휩쓴 ‘벌새’에서 은희(박지후 분)의 친구 지숙으로 등장했다. 게다가 이번 올해의 배우상까지 받으며 조금씩 커리어를 단단히 쌓아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각인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기도 잘하고 구설에 오르지도 않고요. 성격도 좋고 늘 좋은 에너지를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