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단단해요?” 단비(박지현 분)는 야설을 보고 잔뜩 상기된 정석(최시원 분)에게 묻는다. 발기부전이던 정석은 예상치 않은 ‘그 녀석’의 움직임에 죄를 지은 것처럼 화들짝 놀란다. “이야기가 단단하냐고요.” 주어를 생략한 의도한 대사에 야릇한 웃음이 관객석에서 터진다.

영화 ‘동화지만 청불입니다’는 이중적 지위의 부조화에서 빚어지는 코미디를 기반으로 한다. 동화는 순수하지만, 성인소설은 ‘쓰레기’라는 생각을 가진 단비가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게 이 영화의 기본 틀거리다. 신춘문예에서 동화작가로 등단한 아버지 광철(박호산 분)의 뒤를 밟고 싶었건만, 성인 웹소설 출판사 대표 창섭(성동일 분)의 ‘1986년 산(産) 포르쉐 911’ 사이드미러를 부수면서 동화와 야한 소설을 둘 다 써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창섭은 수리비 대신 단비에게 스무 편의 성인 소설을 쓰라는 조건을 제안했다. 소설가로서 재능을 높이 산 건 아니었다. 방심위에 들어오는 각종 검열 관련 민원을 방심위 공무원인 단비에게 청탁하려는 게 본질적 이유였지만, 스토리텔러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걸 보자 눈이 번쩍 뜨였다.

단비는 급성장했다. 친구들이 치트키다. 원나잇 등 다양한 경험을 들려주며 스크린을 끈적하게 적셨다. 필명 ‘파이어폭스’는 덕분에 승승장구했다. 동화작가로서의 꿈이 순간의 실수로 날아가고, 이쪽으로 마음을 정하려는 찰나 고향 집에서 아버지가 써놓은 소설을 보고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실은 아버지가 가려 했던 길이 동화작가가 아닌 성인소설 작가라는 걸 알면서다. 결국 유전자의 힘이 강하다는 명제로 마무리했다.

영화는 무난하게 진행된다. 다소 싱겁다고 느낄 수 있다. 동화와 야설, 검열과 창작이라는 이중적 삶에서 오는 긴장감이 드러나지만, 결말이 짐작가능한 수준이기에 서스펜스가 크진 않다. 단비와 정석이 로맨스로 가는 과정 역시 필수 코스처럼 그려진다. 잔뜩 부풀어 오를 것 같은 이야기 속 이야기가 시간적 공간의 한계로 가다 멈추는 것도 아쉽다.

아기자기한 애니메이션과 각종 성적 메타포가 가득한 장면이 심심한 맛의 영화에 매력을 얹긴 하지만, 아쉬움을 메우는 덴 한계가 있다.

여기에 주연 박지현-최시원-성동일이 그려내는 연기는 흠 잡기 어렵다. 다소 느슨한 텐션에 탄력을 덧입힌다. 몰입감이 느껴지는 건 배우 덕분이다. ‘히든페이스’에서 순진함과 은밀함을 줄타기하며 보여준 박지현은 코미디 장르 특유의 과장된 순간을 자연스러움으로 바꿔낸다. 빛나는 재능이다.

영화 말미 의외의 웃음 포인트가 있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를 비틀어 만든 단비의 소설에 등장하는 성동일의 젊은 모습에 저항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어색한 가발과 화장 대신 세월을 20년 전으로 되돌려 버린 생성형 A.I 기술에 눈이 동그래진다. 제작사 ㈜엠씨에이(박재수 대표)는 지난해 선보인 영화 ‘나야, 문희’ 보다 훨씬 진화한 기술력을 보여줬다. 앞으로 영화 산업에 커다란 변화를 끌어낼 것임을 짐작게 하는 건, 이 영화가 성취한 또 다른 미덕이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