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김상식 감독이 ‘제2의 박항서 신화’을 열었다.
김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5일 태국 방콕의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아세안 챔피언십(미츠비시컵) 결승 2차전에서 3-2 승리했다. 1차전 홈 경기에서 2-1로 이겼던 베트남은 두 경기 합계 5-3으로 앞서며 우승을 차지했다.
베트남이 2년 주기로 열리는 미츠비시컵에서 우승한 것은 지난 2018년 이후 6년 만의 일이다. 당시 박항서 감독이 이끌었던 베트남의 황금기를 김 감독이 재현하는 순간이다. 게다가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이자 동남아시아 최강팀 태국이었다. 태국은 베트남의 강력한 지역 라이벌이기도 하다. 베트남은 지난 두 번의 대회에서 태국을 넘지 못했는데 이번엔 두 경기에서 모두 승리하며 우승까지 차지하는 완벽한 서사를 만들었다.
침체했던 베트남 축구대표팀에는 경사다. 베트남은 전임 사령탑인 필립 트루시에 전 감독 체제에서 길을 잃었다. 트루시에 감독은 팀을 하나로 묶지 못하면서 제대로 된 항해사 역할을 하는 데 실패했다. 김 감독은 부임 후 팀 분위기를 바로 잡았다. 특유의 ‘형님 리더십’으로 선수들을 다독였고, ‘다시 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미츠비시컵을 준비했다. 베트남어로 국가를 부르며 자신이 속한 나라에 대한 강한 존중을 드러내 현지에서 큰 화제를 끌기도 했다.
부임 후 김 감독은 새 얼굴을 발굴하는 데 집중했다. 박항서 감독과 신화를 창조했던 대다수 선수가 전성기에서 내려온 상황에서 젊고 신선한 자원을 찾기 위해 베트남 전역을 누볐다. 귀화 선수 쑤언손은 7골을 넣는 등 맹활약하고, 김 감독이 발굴한 중앙 미드필더 도안 응옥딴도 대표팀의 핵심 자원으로 정착하며 우승에 힘을 보탰다.
김 감독은 전북 현대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 지난 2023년 전북에서 부진했던 그는 서포터의 과도한 비난과 욕설에 시달렸다. 감독으로서 성적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선수, 코치, 감독으로 무려 14년을 보낸 팀에서 인신공격까지 받으며 나와야 했다.
절치부심. 베트남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김 감독은 미츠비시컵 우승을 통해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우승 후 베트남의 팜 민 찐 국무총리는 직접 피치로 내려가 김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을 격려하며 우승의 기쁨을 함께했다. 베트남 언론 탄니엔뉴스는 ‘김상식 감독이 능력을 증명했다’라면서 ‘덜 알려진 선수들을 기용한 김상식 감독의 전략이 베트남의 우승을 이끌었다’라고 집중 조명했다.
우승 후 본지와 연락이 닿은 김 감독은 “새옹지마다. 사실 축구 인생에서 엄청난 위기를 겪었는데 잘 이겨낸 것 같다. 베트남과의 인연을 만들어준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김 감독은 “성남에서 전북으로 이적한 후 2009년 우승했을 때가 생각난다”라면서 “당시 나는 언론을 통해 ‘내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1등과 2등의 차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그 말을 하고 싶다. 전북에서 욕을 먹고 나왔지만 우승 DNA는 다른 곳이 아닌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후련하게 말했다. 실제로 김 감독은 선수, 코치, 감독으로서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이 챔피언에 오른 바 있다. we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