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범죄 커플의 실화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3월2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공연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세상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90여년이 흐른 지금도 한 범죄자 커플을 추종하는 집단이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마치 영화 ‘배트맨’의 조커와 할리 퀸에게 열광하는 수준이다.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콤비의 이야기가 11년 만에 다시 무대로 소환돼 화제의 중심에 섰다.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가 젊은이들의 자유 의식을 깨우며 절찬 공연 중이다. 무려 11년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만큼 현시대의 분위기에 맞춰 더욱 강렬하고 과감한 연출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최근 작품들과 달리 14세 이상 관람가이니 참고해야 할 부분이다.

‘보니 앤 클라이드’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에 실존한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우’의 실화를 바탕으로, 자유를 갈망한 두 사람이 운명처럼 만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시간 속으로 초대한다.

세계적인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재즈·블루스·컨트리 감성이 녹아있는 ‘보니 앤 클라이드’는 새로운 프로덕션과 함께 초호화 캐스팅으로 또 한 번 화제를 모았다.

전설적인 범죄자가 되고 싶은 ‘클라이드’ 역 조형균·윤현민·배나라, 영화 같은 삶을 꿈꾸는 ‘보니’ 역 옥주현·이봄소리·홍금비가 무대에 오른다. 클라이드를 지키는 형 ‘벅’ 역 김찬호·조성윤, 남편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블랜치’ 역 배수정·윤지인, 보니를 짝사랑하는 경찰관 ‘테드’ 역 이은호·권성찬·이제우가 출연한다.

◇ 암흑 세상 탈출 위한 자유의 목소리

배우를 꿈꿨던 웨이트리스와 자유분방한 좀도둑은 고급 자동차를 훔쳐 타고 다니며 단순 범죄를 넘어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다. 이들은 도망자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당당하게 등장해 곳곳을 턴다.

그런데 이들은 우상처럼 불렸다. 생명을 위협하는 이들의 치명적 행보를 당시 많은 이가 응원하고 동경했다. 아찔한 긴장 속에서 피어난 러브 스토리가 당대 최고의 로맨스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무기력한 환경에서 자유를 찾아 떠나는 커플의 이야기는 희극과 비극을 동시에 그린다.

허름하고 낡은 집과 가구, 긁히고 깨진 듯한 글자 하나하나가 절망을 보여준다. 어둡고 지저분한 환경에서 찬란한 희망을 꿈꿀 수 없다. ‘보니 앤 클라이드’는 수감생활이나 기도만으로 용서받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이러한 착각은 위선이라는 것. 이들의 여정에서 마주한 현실에서 얻은 깨달음이다.

무대의 조명이 반론을 제기한다. 끊임없이 교차하는 흑백·컬러 영상 앞에서 핀 조명에 몸을 맡겨 밝은 미래를 상상하며 나아간다. ‘악마의 유혹’일지라도 진정한 ‘사랑’이 존재한다면, 바로 이것이 ‘행복’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도망자 아닌 자유에서 찾은 사랑을 통해 대중이 갈망하는 ‘무엇’을 이야기한다. 이는 가족·형제애, 연애 나아가 용서, 포용까지 아우른다.

◇ 강렬하게 사랑하고 맹렬하게 전사하다

영화의 본고장 할리우드로 향한다던 ‘보니 앤 클라이드’는 중부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배우의 꿈을 잊은 듯 서쪽이 아닌 정반대 방향으로 이동한다. 절도로 시작해 은행강도, 살인으로 점점 범죄 스케일이 커진다. 목적지를 향하는 길은 더 이상 꿈을 위한 여행이 아닌 영혼을 죽이는 고속도로로 변모한다.

범행 현장에서 자신을 우상으로 여기는 시민을 보면 사인을 해주는 등 대범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 하다. 신문사는 ‘보니’의 시를 게재하고, 라디오는 ‘클라이드’의 음악을 송출하니, 당대 최고의 ‘스타’ 대접에 따른 팬 서비스인 셈이다.

‘보니 앤 클라이드’는 스스로 만든 영화 속 주인공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할리우드가 아닌 이들만의 할리우드에서 살았다. 이들이 가는 곳이 촬영장이었고, 도착한 곳이 무대였다.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가 바탕이 됐지만, 누려보지 못했던 평범함 속에서 평안함을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

뜨겁고 정열적인 두 영혼은 헛된 기대를 품지 않았다. 매 순간 전부를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은 상상을 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랑했다. 마당을 쓸어도 쓸어도 다시 쌓이는 중부의 모래바람처럼 이들은 계속 돌고 돌며 자신의 숨결을 남긴다.

피폐해진 세상이 몰아넣은 현장에 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맹렬한 여정 ‘보니 앤 클라이드’는 내년 3월2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