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민규 기자] “프로게이머? 프로 e스포츠 선수.”

표현의 차이인 것 같지만, 이 작은 변화가 한 시대의 위상을 가를 수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전설 ‘페이커’ 이상혁(29·T1)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상혁과 소속팀 T1은 최근 중국 청두에서 열린 ‘2025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 결승에서 KT 롤스터를 3-2로 꺾고 사상 첫 3연패(2023~2025년)를 달성했다. 팀 통산 6번째 우승, 이상혁 역시 개인 통산 6번째 ‘소환사의 컵’을 들어올렸다.

T1의 롤드컵 3연패는 ‘e스포츠의 사건’이 아니라 ‘스포츠의 역사’다. 대통령 축전까지 도착할 만큼, e스포츠는 분명히 국가가 인정하는 스포츠 무대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위대한 순간 앞에서 여전히 아쉬운 표현 하나가 있다. 바로 ‘프로게이머’라는 단어다.

‘게이머’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을 뜻한다. 그러니 프로게이머는 ‘게임을 하는 사람 중 프로’ 정도의 의미에 머문다.

그러나 지금 e스포츠는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섰다. 정규시즌이 있고, 국제대회에 선수 계약, 연봉, 트레이닝 환경, 팬덤, 산업 규모까지. e스포츠 규모는 다른 프로 스포츠와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다투는 종목에 ‘게임하는 사람’이란 표현이 과연 어울릴까.

대한체육회는 지난 202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도 스포츠”라고 명확히 선언했다. 그렇다면 선수 또한 프로 e스포츠 선수라 부르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게이머’는 게임을 하는 사람을 뜻할 뿐, 선수의 전문성과 위상을 담지 못한다.

실제로 한 프로 e스포츠 선수에게 이 같은 표현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그는 “언론도, 선수들도 다 그냥 습관적으로 프로게이머라고 쓰니까 크게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다”며 “그런데 ‘프로 e스포츠 선수’라고 하니까 확실히 자부심이 더 느껴진다. 나부터 바꾸겠다”고 말했다.

말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인식과 격(格)을 만든다. 스스로를 어떻게 부르느냐는 자신의 경력과 업(業)에 대한 태도다.

기자는 10대 아들을 둔 부모다. 아들은 꿈을 묻자 “페이커 같은 프로게이머”라고 씩씩하게 답했다. 그래서 말했다. “다음엔 프로 e스포츠 선수라고 해보자.” 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짧은 찰나였지만, 꿈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이 표현을 강요하려는 건 아니다. ‘게이머’라는 표현이 틀렸다는 뜻도 아니다. 취향과 감각의 언어는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e스포츠의 위상이 올라간 만큼, 그 위상에 걸맞은 격을 갖추자는 제안이다. 프로 e스포츠 선수. 이들은 그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다. km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