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상상 속에 머물 윤심덕과 김우진의 마지막 페이지
스스로 ‘선택’한 새드엔딩은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 ‘신념’
3월 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공연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1926년 비극의 로맨스가 시작됐다. 10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두 주인공을 기억한다.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외친 두 남녀, 김우진과 윤심덕의 이야기가 관객의 가슴을 울린다.
연극 ‘사의 찬미’가 지난달 30일 개막했다. 2025년 초연 이후 5개월 만이다.
작품은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마지막 노래의 제목 ‘사의 찬미’를 붙여, 그의 연인이자 시인 김우진과의 애절한 사랑을 넘어 한 시대를 풍미한 두 신여성의 만남과 우정을 그린다.
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예술과 사랑, 자신의 선택을 놓지 않았던 비운의 소프라노 ‘윤심덕’ 역은 서예지와 전소민이 맡았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극작가 ‘김우진’ 역은 박은석과 곽시양이 연기한다.
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역으로 김려은과 진소연이 무대에 오른다. 시대의 아이러니를 상징하는 음악가 ‘홍난파’ 역에는 박선호와 김건호가 나선다. 지적인 냉소와 유머를 동시에 지닌 일본인 형사 ‘요시다’ 역으로 박민관과 김태향이 출연한다.

◇ 뮤지컬 vs 연극, 경성 스캔들의 마지막 페이지 ‘선택’
공연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뮤지컬 ‘사의 찬미’와 연극 ‘사의 찬미’의 서사를 쫓을 것이다. 윤심덕과 김우진의 러브 스토리는 같지만, 내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2013년 처음 무대에 오른 뮤지컬 작품은 윤심덕과 김우진, 그리고 가상의 인물인 사내가 등장한다. 극의 배경은 윤심덕과 김우진이 실종된 관부연락선에 한정된다.
연극 작품은 1990년 극단 실험극장의 창립 30주년 기념공연으로 초연된 윤대성 작가의 희곡을 바탕으로 재창작됐다. 실제 인물인 윤심덕과 김우진, 홍난파와 나혜석이 시간을 기억한다. 액자식 구성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프랑스 파리와 일본 동경, 조선 등을 여행한다.
두 장르의 마지막 장소는 같다. 1926년 윤심덕과 김우진이 사라진 현해탄(대한해협)이다. 뮤지컬에서는 사내에게 쫓기다가 바다에 몸을 던진 두 사람과 달리, 연극은 모든 걸 체념한 연인의 최후 선택으로 그린다.
연극은 윤심덕과 김우진의 비극적 로맨스에 숨긴 시대적 억압 속에서 예술가로서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인물들의 내면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 서로의 별과 달이 되어 지켜준 사랑과 우정
재연은 초연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군더더기를 뺀 세밀한 서사와 배경에 힘을 준 영상 효과로 요동치는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공연 내내 무대 한편을 지키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는 구슬픔과 애절함을 진하게 녹인다.
윤심덕과 김우진이 함께 바라보는 하늘은 무심하고도 잔인하다. 뜨거운 여름 햇살은 차가운 새벽 공기에 식는다. 마른 낙엽을 떨어뜨리는 가을비는 눈물이 된다. 두 사람은 부서지는 검푸른 파도를 맞으며 바다 위에서 이슬로 사라진다.
파리에서 윤심덕을 만난 나혜석은 그의 초상에 영혼을 담아 영원한 숨결을 불어 넣는다. 사회적 낙인이 찍힌 그를 가장 인간적으로 지켜준 대목이다. 그가 어딘가에 살아있길 바라는 희망 사항이자 지켜주고 싶은 연민의 그리움은 아닐까.

◇ 심장을 두드린 비극은 후련한 결말로 남다
윤심덕과 김우진이 어떻게 만나 사랑에 빠졌고, 어디로 떠났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없다. 시간이 흘러 이들의 사랑을 ‘비극의 로맨스’라고 부르며 애틋한 상상에 빠진다.
1920년대 경성 최고의 스캔들 주인공들의 러브 스토리에는 ‘왜’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이들이 원했던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예술은 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해야 하는가. 후대에도 이 둘을 그리워하며 곱씹는가.
정반대의 환경에 놓인 남녀는 사랑하는 법도 달랐다. 하지만 이들에게 ‘다름’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유혹’이었다. 그 끌림은 예술가로서 끝까지 지켜낸 강한 ‘신념’이었다.
두 사람의 ‘진짜’ 시작과 끝은 계속 상상될 것이다. 이들의 여생이 관객들의 가슴 속에서만큼은 해피엔딩이길 기원하기 때문이다.
사(死)의 찬미(讚美)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더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가느냐
사라져버린 두 사람이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만 같은 연극 ‘사의 찬미’는 오는 3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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