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요코하마=함상범 기자] “이 작은 빛들이 모여 ‘레드 오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 계신 모두가 함께, 동방신기입니다.”

일본 공연계의 성지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이 거대한 붉은 바다로 변했다. 7만 명의 관객이 일사불란하게 흔드는 붉은 응원봉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 중심에는 24년 차 아티스트 동방신기가 서 있었다.

동방신기는 지난 25일 일본 요코하마 닛산 스타디움에서 ‘동방신기 20th 애니버서리 라이브 인 닛산 스타디움 ~레드 오션~(東方神起 20th Anniversary LIVE IN NISSAN STADIUM ~RED OCEAN~)’을 개최했다. 이번 공연은 양일간 총 1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동방신기의 일본 데뷔 20주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 “바라면 이루어진다”…중압감을 환희로 바꾼 진심

등장부터 비장했다. 무려 6만5000명을 수용하는 스타디움을 단 두 사람이 채워야 한다는 중압감이 20년 차 베테랑의 얼굴에도 찰나의 긴장으로 스쳐 갔다. 공기는 단숨에 바뀌었다.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웅장한 함성은 이내 동방신기의 독보적인 기세에 압도됐다. ‘스몰 토크(Small Talk)’로 시작해 ‘스페셜 원(Special One)’으로 향하는 첫 파트에서 두 멤버는 이미 수 만 관객을 완전히 장악했다. 200m 가까이 되는 무대 곳곳을 누비며 팬들과 눈을 맞추는 이들에게서 광활한 스타디움을 다루는 노련함이 묻어났다.

본래 정숙한 관람 문화를 지향하는 일본 팬들이지만, 이날만큼은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쉼 없이 응원봉을 흔들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은 그 뜨거운 마음을 온몸으로 느낀 듯 콘서트 내내 벅찬 감동을 전했다.

최강창민은 “다시 한번 닛산 스타디움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꿈만 같다”며 말문을 열었고, 유노윤호는 “작년 앨범 자켓에 닛산 공연을 바라는 마음을 담았는데 그 꿈이 현실이 됐다.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외쳐 뜨거운 환호를 이끌어냈다.

◇ 20년 서사 잇는 ‘어제, 오늘 그리고 미래’

이번 공연의 세트리스트는 단순한 히트곡 나열을 넘어 동방신기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낸 ‘연대기적 설계’가 돋보였다.

공연의 뿌리는 퍼포먼스 정체성을 상징하는 ‘라이징 선(Rising Sun)’이 담당했다. ‘이제 내가 떠오르는 태양(Now I’m the rising sun)’이라는 가사처럼,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강렬함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모습은 동방신기의 본질이 타협하지 않는 퍼포먼스에 있음을 증명했다.

여기에 ‘어째서 너를 좋아하게 되어 버린 걸까’ ‘믿는다면 내일은 오니까’ 등 일본 현지에서 국민적 인지도를 가진 발라드 곡들은 성숙해진 보컬의 힘을 보여줬다. 자극적인 사운드 없이 오직 두 사람의 목소리만으로 모두를 숨 죽이게 만드는 힘은 일본 팬들과 20년을 호흡해 온 정서적 유대감의 깊이를 가늠케 했다.

미래를 향한 약속도 잊지 않았다. 이날 공연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중심에는 2026년 신곡 ‘아이덴티티(IDENTITY)’가 있었다. 유노윤호는 “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여러분과 함께해 왔다. 가사를 음미해 달라. 여러분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소개했다. ‘이것이 나의 아이덴티티’라고 외치며 2006년 ‘츄시 러버(Choosey Lover)’의 경쾌함에서 ‘아이덴티티’의 세련된 중량감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팬들에게 함께 나이 들어가는 성장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 아이돌을 넘었다…세대 불문 ‘국가대표급 브랜드’의 힘

공연장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어린 딸과 함께 찾은 엄마, 스무 살이 넘은 아들과 온 부모, 심지어 사위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장모도 있었다. 50대는 물론 흰머리가 가득한 고령층까지 빨간 응원봉을 들고 닛산을 채웠다. 이는 동방신기가 단순한 아이돌을 넘어 일본 내에서 하나의 ‘국가대표급 브랜드’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장에서 만난 팬들의 목소리에는 긴 세월 이어온 애정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나고야에서 온 에미(50) 씨는 “2011년부터 동방신기를 좋아했다. 일본 아이돌과는 차원이 다른 노력과 새로운 에너지를 주는 퍼포먼스에 매료됐다”며 “죽을 때까지 좋아할 것 같다”고 과시했다. 20년 전부터 팬이었다는 하루카(39) 씨는 “아홉 살 딸 사라의 태교를 동방신기로 했다”며 딸과 함께 ‘레드 오션’의 일원이 된 감동을 전했다. 그녀는 딸 옆에서 “나와도 결혼해 달라”는 청혼으로 유쾌한 웃음을 남기기도 했다.

◇ 닛산을 가로지르는 전력질주…“우리의 정체성은 팬”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 무대였다. 8년 만에 다시 선 닛산 스타디움의 트랙을 두 멤버가 전속력으로 가로질렀다. 200m를 전력질주하면서도 라이브에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두 사람이 폭발하는 아드레날린으로 완성한 무대는 관객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그 뜨거운 열기는 곧장 객석으로 전이됐다. 정숙하게 노래를 듣던 일본 팬들의 움직임이 점차 커졌고,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의 열정은 팬들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무대 끝 무렵, 붉은 물결은 어느덧 거센 파도가 되어 닛산 스타디움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부부 팬인 하즈키(30) 씨는 “멤버들이 전력을 다해 뛰어다니는 모습을 꼭 보고 싶었다”며 “20주년을 맞아 이렇게 큰 곳에서 다시 만난 것은 팬들에게 희망의 결정체이자 삶의 양식”이라고 벅찬 소회를 전했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동방신기는 여전히 그 자리에 ‘전설’로 우뚝 서 있었다. 약 7만명이라는 압도적 숫자 앞에서도 ‘1만 시간의 법칙’을 충실히 지킨 이들은 완벽한 여유와 소통으로 웅장한 축제를 만들어냈다. 닛산 스타디움을 삼킨 붉은 물결은 그들이 왜 여전히 ‘톱클래스’인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증거였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