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글·사진 | 부안=원성윤 기자] 전북 부안에 자리한 변산반도국립공원은 수천만 년 전 거대한 화산 폭발이 빚어낸 독특하고 신비로운 지형을 자랑한다. 굽이치는 산세와 드넓은 바다가 어우러져 경이로운 비경을 품은 이곳은, 짙은 녹음과 화사한 봄꽃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탐방객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 신비한 화산 지형의 품에 안긴 대표적인 사찰이 바로 내소사다. 사찰로 향하는 고즈넉한 길목에서 이미자 자연환경해설사의 생동감 넘치는 설명이 탐방객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는 “내소사를 병풍처럼 두른 능가산(楞伽山)은 불교 범어로 ‘그곳에 이르기 어렵다’는 뜻을 지녔다”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험난한 산길을 인내해야만 정상에 닿을 수 있듯, 부처의 깨달음을 얻는 과정 역시 그토록 고단하고 험난하다는 묵직한 의미를 품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소사의 상징인 500m 길이의 숲길에는 수령 400년에 달하는 전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서 있다. 전나무 숲은 나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생명력의 현장이기도 하다. 해설사는 “전나무는 상처가 나면 스스로를 치유하는 하얀 진액을 내뿜고, 시간이 지나 그 자리에 옹이가 생기게 된다”고 했다. 수백 년 비바람을 견디며 스스로 상처를 꿰매 온 천년 숲의 생명력은 현대인들에게 깊은 위로를 건넨다.
대웅보전에 다다르면 오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건축미와 마주한다. 화려한 단청 대신 나무결이 그대로 드러난 대웅보전은 400년 비바람에 색이 바랜 결과다. “문헌이 없어 단청을 복원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내소사만의 독보적인 매력이 됐다”는 해설사의 말처럼,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낡음이 발길을 오래 머물게 한다.




내소사의 고즈넉함을 뒤로하고 차를 달려 변산 북동쪽 자락으로 향하면, 또 다른 천년 고찰 개암사와 마주하게 된다. 대웅전 뒤편으로는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묏부리가 시선을 압도하는데, 화산 활동이 빚어낸 거대한 바위산 ‘우금암(우금바위)’이다. 수천만 년 전 화산재와 암석이 단단히 굳어 형성된 이 응회암 덩어리는 변산반도의 역동적인 지질학적 기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엄한 경관이다.
단순한 자연의 경이를 넘어 우금암 일대는 뼈아픈 역사가 서린 곳이다. 바위 아래 자리한 우금산성은 멸망한 백제의 유민들이 왕자 부여풍을 옹립하고 3년여에 걸쳐 치열한 부흥운동을 전개했던 최후 항전지였다. 척박한 화산 바위산 위에서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맞서 나라를 되찾겠다며 불태웠던 염원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장엄한 풍경 속에 켜켜이 쌓인 비장한 역사는 가슴에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비장한 역사를 지나 변산반도의 심장부인 내변산 탐방로에 들어서면, 직소폭포로 이어지는 절경이 펼쳐진다. 화산암이 오랜 세월 풍화돼 깎이며 만들어낸 기암괴석과 맑은 계곡물이 어우러지는 이 길은 내변산 비경의 으뜸이다. 이어 외변산으로 발길을 돌리면 퇴적암 층리가 파도에 깎여 붉은 색감으로 서해 바다와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채석강과 적벽강이 탐방객을 압도한다.
수천만 년의 생태·지질 자원이 온전히 보전돼 온 배경에는 국립공원공단의 헌신이 있다. 공단은 생태계를 훼손 없이 보전하는 동시에, 전문 해설사 제도를 통해 신비로운 화산 지형의 역사와 생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국립공원을 입체적인 배움과 치유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공단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고 있다. socool@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