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

[스포츠서울 유인근 선임기자]언제나 변함없이 단단할 것만 같았던 ‘탱크’ 최경주(46·SK텔레콤)의 나이도 어느새 불혹을 넘어 40대 중반을 내달리고 있다. 탱크같은 뚝심을 앞세워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8승을 거둔 한국 남자골프의 영웅이자 PGA 투어를 꿈꾸는 수많은 후배들의 롤 모델이 된 그도 쏜살처럼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최경주는 지난해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19개 대회에 나서 ‘톱10’에 한 번도 들지 못한 채 5번이나 컷탈락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우승은 5년 여전인 2011년 5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우승이 마지막이었다. 마흔을 넘어가면서 시작된 슬럼프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했다. 그렇게 한 시대를 호령했던 탱크의 시대가 저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최경주는 오로지 골프만 바라보고 긴 슬럼프 이겨냈다.

최경주는 2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토리파인스 골프장 남코스(파72·7569야드)에서 열린 PGA투어 파머스 인슈어런스오픈(총상금 650만 달러)에서 부활을 알렸다. 그는 대회 5일째 비바람으로 순연된 4라운드 잔여경기 8개 홀에게 1타를 더 잃고 최종합계 5언더파 283타로 브랜트 스네데커(미국)에게 1타 뒤진 2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준우승 상금은 70만 2000달러(약 8억 4000만원). 5년여 만에 통산 9승째를 노린 최경주로서는 너무나 아쉬운 경기였지만, 아직 녹슬지 않은 탱크의 존재감을 알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최경주는 이번 대회에서 전성기 못지 않은 샷감을 보였다. 2라운드에서 5언더파를 몰아쳐 공동선두에 오른 뒤 3라운드까지 선두를 유지하며 통산 9승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번 겨울 동안 중국 광저우 전지훈련 캠프를 차리고 구슬땀을 흘린 결과다. 젊은 선수들에 비해 떨어지는 장타력을 노련미와 정교함으로 메운 그는 전 대회인 소니오픈에서 비록 50위에 그쳤지만 8언더파를 기록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 당당히 단독 2위에 돌라 자신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준우승도 탱크의 부활을 알리기에 부족함은 없지만, 우승 문턱에서 비바람에 무너진 것이 아쉬웠다. 4라운드가 강한 비바람에 이틀에 걸쳐 치러지는 바람에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은 탓이다. 이날 잔여경기도 밤새 몰아친 강풍 탓에 2시간 늦게 시작됐다. 지미 워커(미국)에게 1타 뒤진 공동 2위로 11번홀에서 경기를 재개한 최경주는 한때 공동 1위로 올라서기도 했지만 14번홀(파4)에서 나온 뼈아픈 보기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리는 등 고전 끝에 볼을 그린에 올렸지만 2m 남짓한 파 퍼트가 홀을 비켜가고 말았다. 최경주는 스네데커에게 1타 뒤진 2위로 내려섰고 더이상 타수를 만회하지 못했다. 이미 전날 경기를 끝낸 스네데커는 선두권이 비바람 등으로 무더기로 타수를 까먹는 바람에 뜻밖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유인근기자 ink@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