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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스포츠 세계에서 감독은 흔히 장수(將帥)에 비유되곤 한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전쟁터에서 사람을 부려야 하는 장수에겐 많은 덕목이 요구된다. 적을 무찌를 수 있는 지략은 물론이요, 무엇보다 병사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한몸에 받을 수 있는 품격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가장 소중하다는 목숨, 그것도 타인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게 할 수 있는 인간적 풍모를 갖추는 일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그래서 장수는 키워지는 게 아니라 타고난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스포츠 세계에서 감독도 그와 비슷하다. 스포츠 세계에서 “감독감은 따로 있다”고 하는 것도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게다. 고매한 인격에서 우러나오는 카리스마, 그게 바로 존경받는 감독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품격이 아닐까 싶다.

지난 주 스포츠서울의 보도로 외부에 알려진 여자배구 대표팀의 성추행 파문은 수면 아래 잠자던 감독의 품격을 불현듯 떠오르게 했다.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가 나와봐야 사건의 정확한 개요를 파악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 있어 펜을 들었다.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마땅한 차해원 전 감독의 비굴한 행동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스포츠는 그 어떤 분야보다 정정당당해야 멋있다. 스포츠는 정직함과 공정성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건이 터진 뒤 특정언론을 통해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 내용은 국가대표를 이끈 장수의 품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책임감은커녕 자기변명과 핑계로 사태를 비켜가기에 바빴다. 코칭스태프 선임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코치를 뽑지 못해 결과적으로 이런 사건이 터졌다는 그의 변명은 팩트의 진위여부를 떠나 국가대표팀을 이끈 감독의 품격이 저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는 성난 여론에 불꽃을 당겼다.

그가 공개한 코칭스태프 선임 과정은 솔직히 사실이다. 팩트가 사실이라면 이를 전하는 게 뭐 그리 잘못된 일일까 하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좀 더 깊숙이 들어가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팩트가 외부로 알려진 시점, 그리고 팩트가 어떤 매체를 통해 어떤 의도로 기사화됐는지는 때론 그 진위여부보다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는 넘지말아야 할 선이 있다. 때론 억울해도 가슴에 묻고 가야할 일도 있는 게 세상사다. 세상은 결코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남들이 선망하는 자리에서 책임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책임있는 자리를 맡으려면 그만한 일을 감내할 수 있는 품격을 갖춰야한다는 옛 어른들의 혜안에 뒤늦게나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차 전 감독이 특정 매체를 통해 미주알고주알 까발린 내용은 사실이다. 일견 차 감독이 참 억울하구나 하는 동정심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성추행 사건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사건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종합해보면 성추행 사건보다 더욱 교묘하고 치졸한 흔적이 감지되기에 가슴이 더욱 아프다. 따지고보면 차 전 감독의 선임 과정도 잡음이 많았다. 구구한 말들이 난무했다. 그의 감독 선임은 객관성을 상실하고 특정인맥이 가동됐다는 시각도 우세했다. 사후약방문이지만 코치선임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그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말었어야 했다. 그게 바로 감독의 정도(正道)요, 자존심이다. 사건이 터지고 난 뒤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내가 뽑은 코치가 아니라 내 책임은 없다”고 항변하는 모습은 저열하고 군색하다. 물론 억울한 면도 없지 않겠지만 품격을 지켜야 할 장수는 돌아선 뒷모습이 당당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태는 예고된 참사나 다름없다. 차 전 감독 스스로가 여자배구 대표팀을 책임지고 이끌 자리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었기 때문에 그렇다. 그의 불편한 가정사는 왜 그가 여자배구 대표팀 수장으로 부적합한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이유다. 그는 당당한 장수가 아니라 이익에만 밝은 얕은 장사치에 가깝다. 여자배구 대표팀의 비극은 격에 맞지 않는 인물이 장수의 옷을 입을 때부터 이미 시작됐다고 보는 게 옳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