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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실전보다 중요한 경험은 없다. 여유를 갖고 먼 곳을 응시하며 고졸 신인선수를 과감하게 기용한다. 울산 현대모비스 유재학 감독이 고졸 신인 서명진(20)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
서명진은 지난해 11월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8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4, 5번째에서 지명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3순위 지명권을 손에 쥔 현대모비스가 서명진을 지명했다. 모든 포지션에서 국가대표 선수를 보유한 현대모비스지만 포인트가드 양동근의 후계자가 필요했고 서명진이 전체 3순위서 호명됐다. 이로써 서명진은 2015년 입단한 KCC 송교창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1라운드에서 지명된 고졸선수가 됐다. 팀 동료이자 리그 최고참 문태종과는 무려 24살 차이다.
드래프트 직후 유재학 감독은 “서명진은 기본적으로 재능이 있는 선수다. 나이도 어려서 가르쳐 키울 여지가 많다”며 긴 시간을 두고 서명진의 기량을 향상시키겠다고 했다. 고졸이든 대졸이든 어차피 프로에 들어오면 리셋이다. 아마추어와는 180도 다른 무대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보다 강한 훈련과 뛰어난 기술, 전술 이해도가 동반돼야 한다. 차라리 아예 어린 나이에 높은 수준을 경험하는 게 낫다고 본 유 감독이었다.
그런데 유 감독은 예상보다도 과감하게 움직였다. 지난 3일 원주 DB전부터 서명진을 모든 경기에 출전시키고 있다. 출전시간도 적지 않다. 지난 5경기 중 4경기서 10분 이상을 출장했고 지난 12일 서울 삼성전에선 21분 이상을 뛰었다. 주전가드 양동근과 이대성이 부상으로 빠진 게 가장 큰 원인이지만 확률적인 안정을 택했다면 박경상에게 기회를 주면 됐다. 현재 서명진은 팀내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포인트가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기회를 받고 있다.
물론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다. 서명진은 16일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8~2019 SKT 5GX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와 경기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플레이 하나하나에 기복과 경험 부족이 뚜렷하게 드러났지만 유 감독은 좀처럼 서명진을 벤치로 부르지 않았다. 승부처였던 4쿼터 종료 3분여 전에도 서명진을 투입하는 과감함도 보였다. 이종현까지 주축 선수 3명이 빠졌음에도 현대모비스는 KGC인삼공사보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우세를 점한다. 특히 높이에서 KGC인삼공사를 압도했다. 높이만 살리면 승리를 자신할 수 있다. 유 감독은 하루라도 빨리 서명진이 프로 무대에서 적응하도록 매 경기 주사위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서명진은 교체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벤치를 바라보며 우물쭈물했고 속공 찬스에서 허무하게 턴오버를 범했다. 패스 하나면 쉽게 득점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공을 놓쳤다. 그러면서도 오픈 3점슛을 넣고 행운의 버져비터도 터뜨렸다. 상대 압박수비에 당황했지만 다시 고개를 들고 코트 위를 질주했다. 4쿼터 막바지 상대의 풀코트프레스에 무너지지 않았고 날카로운 패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승부에 쐐기를 박을 수 있는 자유투를 놓치면서도 라건아에게 완벽한 패스를 했다. 아직은 프로의 몸으로 보기 힘들어도 근육이 붙고 힘이 생기면 타고난 센스를 앞세운 대형가드가 될 수 있는 자질을 드러냈다.
결국 현대모비스는 접전 끝에 KGC인삼공사에 80-72(22-6 20-15 24-33 14-18)로 승리했다. 서명진은 10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점했다. 라건아가 21점 13리바운드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KGC인삼공사는 레이션 테리가 26점으로 최다득점자가 됐지만 마지막 추격에 실패했다.
경기 후 유 감독은 4쿼터서 풀코트프레스에 고전한 것을 돌아보며 “강동희나 이상민, 김승현 같은 선수들이라면 아주 쉽게 풀어갔을 것이다. 우리팀에서 명진이가 나중에 그렇게 될 것이다. 지금은 몸도 안 되고 체력도 안 돼 당황하지만 밸런스가 잡히고 힘이 붙으면 충분히 뛰어난 모습을 보여줄 선수”라며 “명진이가 실수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당돌한 점은 칭찬할 수 있다. 숨이 차서 그렇지 상대가 붙어도 주눅이 들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패스를 한다”고 서명진을 치켜세웠다.
서명진은 4쿼터 후반 자유투 2개를 놓친 순간을 두고 “놓친 것은 안타까웠지만 빨리 잊고 다음 수비 열심히해야 한다고 다짐했다”며 “사실 고등학교까지는 패스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프로에 와서 뛰어난 선배님들이 많아 패스에 치중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는 돌파와 슛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프로 생활을 하는 것과 관련해선 “수비 전술이나 공격 패턴이 고등학교에 비해 정말 다양하다. 하나씩 배우고 있는데 배울 때마다 머리에 과부하도 걸린다. 그래도 힘들 때마다 형들과 코치님들께서 도와주신다”고 웃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프로 입단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점한 것에 대해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10점을 올린 것을 알았다. 하지만 득점보다는 턴오버를 많이 한 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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