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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반발계수를 조정한 공인구 효과는 확실했다.
올 시즌 KBO리그 전반기는 공인구와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년째 KBO리그는 ‘타고투저’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국제 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컸다. KBO 사무국은 공인구 반발계수를 기존 0.4134~0.4374에서 일본프로야구 수준인 0.4034~0.4234로 조정했다. 올 초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 때만 하더라도 공을 던지는 일부 투수 정도만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 타자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정규리그 들어서는 입장이 바뀌었다. 공에 익숙해진 투수들과 다르게 거포들은 정타를 때려도 좀처럼 펜스를 넘어가지 않자 타격 매커니즘 자체가 흔들렸다.
수치로만 봐도 새 공인구의 힘이 느껴진다. 우선 홈런이 크게 줄었다. 지난해 시즌 개막 후 471경기에서 1086개의 홈런이 나왔다. 그러나 올 시즌엔 472경기에서 683개에 그쳐 37.1%나 줄었다. 해당 기간 지난해 10개 팀 중 8개 팀이 100개 이상 홈런을 쳤는데 올 시즌엔 단 1개 팀도 없다. 가장 많은 홈런을 친 롯데가 85개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가장 홈런을 적게 친 두산(93개)에도 미치지 못한다. 공인구 효과를 가장 단편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장면이다. 17일까지 홈런 순위에서 최정(SK)이 22개로 선두를 달리고 있고 제이미 로맥(SK)과 제리 샌즈(키움)가 나란히 20개로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엔 471경기 만에 이미 최정과 김재환이 31개의 홈런을 쳤다. 당시 5위를 달리던 김동엽(SK)과 멜 로하스 주니어(KT)가 올 시즌 현재 최정보다 더 많은 23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최정의 페이스를 144경기로 환산하면 산술적으로 32~33개의 홈런을 기록할 수 있다. 2013년 이후 6년 만에 ‘30 홈런대 홈런왕’이 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3할 타자도 대폭 줄었다. 지난해 471경기까지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3할 이상 타자는 33명이었다. 전체 평균 타율도 0.305로 3할을 넘어섰다. 그러나 올 시즌 472경기에서는 19명으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었다. 평균 타율은 0.288에 불과하다. 장타율은 0.496에서 0.428, 출루율은 0.369에서 0.364로 각각 하락했다.
“공이 안 나간다”는 말이 지도자와 선수 사이에서 끊임 없이 나오면서 타자들은 심리적으로도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평소처럼 자기 스윙을 했는데도 홈런성 타구가 펜스 앞에서 잡히거나 장타가 단타로 둔갑하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해 ‘잠실 홈런왕’ 김재환이나 롯데 간판타자 이대호 등 거포들이 슬럼프에서 탈출하는데 애를 먹은 이유다. 6월 타율 0.247로 부진하다가 7월 13경기에서만 0.404로 반전한 제라드 호잉(한화)은 최근 “지난해와 다르게 홈런성 타구가 펜스 앞에서 많이 잡혔다. 나도 모르게 공을 강하게 치려고만 했다. 지금은 홈런 생각을 버리고 안타를 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결국 장타를 노리기보다 콘택트 위주로 가볍게 밀어치며 공인구에 적응하는 타자들이 득세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인구가 타자에게 심리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투수들에겐 호재가 됐다. 올 시즌 팀 평균 방어율은 4.28로 지난해 4.98보다 나아졌다. 2점대 방어율 투수도 지난해 3명에서 6명으로 두 배 늘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여러 감독이 공인구 효과를 인지하고 투수들에게 공격적인 투구를 요구하기도 했다. 실제 여러 투수들이 정규리그에서 이전보다 정면 대결을 많이 선택하고 있다. 볼넷 숫자를 보면 파악이 쉬운데 지난해 849개에서 올 시즌 780개로 크게 줄었다. 완봉승도 지난해 3회에서 올 시즌 6회로 두 배나 늘었다. KBO가 야심 차게 도입한 새 공인구가 ‘타저투고’ 시대로 변화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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