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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홀슈타인 킬의 미드필더 이재성이 22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스포츠서울과 인터뷰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현기기자

[스포츠서울 이지은기자] “독일에 오자마자 한 일이 있습니다.”

‘동생의 성격을 설명해달라’는 요청에 이재성(27·홀스타인 킬) 친형 이재혁 씨는 잠시 말을 골랐다. 고심 끝에 선택한 단어는 ‘진중하다’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 씨는 하나의 일화를 소개했다. “처음에 저희가 독일에 오자마자 재성이가 한 일이 있습니다. 자신이 쓰는 다이어리에 이곳에서 이루고자 하는 꿈을 하나하나 손으로 적었어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유럽에 입성한 만큼, 스스로 세운 인생 계획을 확인하며 마음을 다잡은 거죠. 그대로 다 이뤄진 건 아니지만, 아직도 그 목표들을 향해 하나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형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노력 많이 하는 선수예요.”

한국에서 이재성은 축구로 배고프지 않은 선수였다. 연령대 대표팀에 꾸준히 소집될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실력을 인정받았고, 2014년 프로 데뷔 직후부터 ‘강호’ 전북 현대에서 주전으로 자리매김, K리그 우승을 3번이나 경험했다. MVP도 수상했다.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 출전에 이어 현재 A대표팀에서도 꾸준히 부름을 받는 자원이다. 그런 그가 몸값을 낮춰가면서까지 독일 2부리그(2.분데스리가)를 택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향한 간절한 열망 때문이었다. 가시밭길이 예고된 어려운 도전이었으나, 진중한 성격의 이재성이 내린 결정인 만큼 가족들도 이를 만류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형은 가장 열렬한 지지자였다. 동생의 빠른 현지 적응을 위해 열 일을 제쳐놓고 독일로 함께 떠났다.

독일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 킬은 이맘때쯤부터 겨울 바람이 불어든다. 추위를 잘 타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이재성의 생각을 바꿨던 기후였다. 그라운드에 나서면 잔디를 밟을 때부터 느낌이 달랐다. 비가 자주 오는 우중충한 날씨가 지속되는 가운데 구단은 선수들에게 비타민 보조제를 의무적으로 복용하게 했다. 독일 음식이 생각보다 잘 맞지 않은 탓이 형이 한식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기도 했다. 이재성에게 이 기간은 시행착오로 점철된 추억이 됐다. 지난 1년 동안 매주 독일어 수업을 받은 끝에 원어민과도 웬만한 소통이 되는 수준으로 언어 능력이 올라섰다. 통증을 안고 뛰었던 첫 시즌을 뒤로 하고 올여름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몸 상태도 100%로 올라왔다.

유럽 진출 후 받아든 두 시즌 성적표가 바로 이를 증명한다. 2018~2019시즌 31경기에 출전해 5골 8도움으로 연착륙하며 성공적인 데뷔시즌을 보냈는데, 이번 시즌에는 아직 7경기밖에 출전하지 않았음에도 4호골을 터뜨리는 등 득점 페이스가 훨씬 빠르다. 독일 2부리그 득점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본래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는 데다가, 수비 가담도 적극적인 선수였으나, 킬에선 최전방에 둬도 한 경기 멀티골을 몰아친 덕분에 최근 맡는 포지션이 더 늘어났다. 성적 부진으로 사령탑이 교체되는 와중에도 입지에는 흔들림이 없는 상태다. 이제 독일 입성 2년 차, 새 전성기를 맞이한 이재성은 이제 ‘1부 입성’이라는 다음 목표를 정조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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