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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성 호치민 감독이 21일 베트남 호치민의 한 호텔에서 만나 본지와 인터뷰한 후 사진을 찍고 있다. 호치민 | 정다워기자

[호치민=스포츠서울 정다워기자]정해성(61) 호치민 시티 FC 감독은 만년 꼴찌팀을 강팀으로 변모시켰다.

정 감독이 이끄는 호치민은 지난 올시즌 V리그에서 두 경기를 남겨놓고 준우승을 확정했다. 여기에 FA컵 4강에 올라 있어 우승까지 노릴 수 있는 상황이다. 불과 지난 시즌까지 호치민은 리그의 약체였다. 2017~2018시즌 연속으로 14팀 중 12위에 머물렀다. 간신히 강등을 피하던 호치민은 정 감독 부임과 함께 변화했다. 호치민은 리그 내의 알짜 선수들을 수급해 전력을 업그레이드 했고, 팀을 만들 지도자로 정 감독을 선택했다. 정 감독은 K리그와 국가대표팀을 오가며 쌓은 풍부한 지도 경험에 지난 시즌 호앙아인잘라이에서 얻은 베트남 축구의 대한 지식을 가미해 호치민을 경쟁력 있는 팀으로 탈바꿈시켰다. 지난 21일 호치민에서 만난 정 감독은 “모든 게 잘 맞아 떨어진 결과다. 구단과의 소통, 코치들과의 협업, 선수들의 마음을 얻는 것까지 잘 됐다”라며 반전의 비결을 설명했다.

◇“회장이 벤치에 앉는 것부터 못하게 했다”

동남아시아 구단은 회장이나 구단주 등 입김이 센 인물들이 월권을 행사하는 사례가 많다. 대부분의 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직접 벤치에 앉아 선수 출전, 전술에 관여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베트남도 다르지 않다. 정 감독은 일단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그는 “지난 시즌 호앙아인잘라이에서도 그랬다. 못 보던 일이라 그런지 베트남 언론에서도 굉장히 크게 기사를 내기도 했다”라면서 “회장이 이런 저런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선수 선발이나 투입, 전술 등에 많이 관여하면 잘 될 일도 안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벤치에 앉지 말것을 요구했다. 마침 회장도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뒤에서 열심히 지원해 고마운 마음이 크다”라며 회장의 배려 속에 팀을 이끄는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밝혔다.

◇코치들의 마음을 얻는 ‘히딩크식’ 리더십

정 감독이 호치민에 부임하자마 한 일은 현지 코치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었다. 외국인 감독의 경우 국내 코치들과 엇박자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정 감독은 경험을 통해 알았다. 그래서 베트남 코치들에게 업무를 확실하게 분담하고 의견도 잘 들어줬다. 여기에 아시아 경험이 풍부한 젊은 지도자 김태민 코치가 합류해 정 감독을 도왔다. 정 감독은 “과거 히딩크 감독님을 보면 국내 코치들과의 협업이 굉장히 잘 이뤄졌다. 제가 훈련을 이끌었고, 박항서 감독님은 선수들의 마음을 잘 만졌다. 스태프들의 도움 없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라면서 “코치들도 잘 따라와줬다. 덕분에 팀이 하나로 묶였다”라고 말했다.

◇보너스, 복장, 스마트폰까지 ‘규율 만들기’

정 감독은 이미 선수 구성이 끝난 시점에 부임했다. 원하는 선수 영입은 아예 불가능했고, 있는 자원으로 팀을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회장이 중요하게 여기는 선수 두 명이 삐딱선을 탔다. 실력은 분명 있는데 불성실하게 훈련해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문제를 야기했다. 정 감독은 “안 되겠다 싶어 처음에는 내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면담을 통해 내 생각을 확실하게 전달했다. 훈련부터 제대로 하면 인정해준다고 했다. 그러자 이 선수들이 변화했다. 나중에는 신이 나서 열심히 하더라. 결국 팀의 핵심이 됐다”라며 뿌듯해 했다. 팀의 규율을 만드는 일도 시급했다. 전임 감독은 보너스 체계를 잡지 못해 선수들 사이에서 불만이 많았다. 사람 많은 곳에 식사를 하러 가는데 슬리퍼를 신고 대충 나오는 선수도 많았다. 팀 미팅 중에도 스마트폰을 들여야 보는 선수들이 수두룩했다. 정 감독은 “일단 규칙을 만들어야 했다.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지킬 것은 지키자고 했다. 다행히 선수들이 잘 받아들였고, 지금은 잘 정돈이 됐다. 기초적인 것부터 개선하자 가장 중요한 경기력도 향상됐다”라고 설명했다.

◇기본에 대한 아쉬움

정 감독은 여전히 후진적인 리그 운영 방식과 심판 수준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다. 특정 기업인이 여러 개의 구단을 소유하고 있어 공정한 승부가 이뤄지지 않을 우려가 있고, 심판 판정도 납득하기 어려운 때가 있다는 것이다. 정 감독은 “시즌 중반까지 우리가 1위였다. 그런데 호앙아인잘리아 회장이 ‘호치민은 절대 우승 못한다’고 하더라. 알고 보니 심판 판정이 하노이 쪽으로 유리하게 가기 때문이라는 의미였다. 핑계를 대고 싶지 않지만 마냥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더라. 한 번은 경기 도중 너무하다 싶어 화를 심하게 낸 적이 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강하게 어필했다. 베트남 축구가 발전하려면 이런 기초적인 부분이 개선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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