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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세상 일이란 게 꼭 그렇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일이 귀신 곡할 노릇같이 꼭 벌어지는 게 바로 세상사다.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던 지난 11일 국기원장선거에서도 ‘머피의 법칙’은 그대로 되풀이됐다. 결선 투표까지 가는 박빙의 승부끝에 최영열(71) 전 원장직무대행이 뽑혔지만 선거 전 재앙의 불씨가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여겼던 사항이 결국 발목을 잡고 말았다. 시간의 흐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건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고,어찌됐건 향후 사태가 어떻게 수습되느냐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태는 특정한 의도가 개입됐다기 보다는 심모원려(深謀遠慮)의 태도를 견지하지 못한 국기원 사무국의 행정실수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국기원장 선거라는 상징성에 걸맞게 공정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를 위탁하기로 결정한 것도 바로 그래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기원장 선거를 위탁 관리하면서 오히려 사달이 난 건 어찌보면 아이러니다. 선거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성을 지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날카로운 전문성을 뽐내며 정관과 규정 사이의 불일치를 짚어내는 것까지는 좋았다. 정관에 명시된 “출석인원 과반수로 당선인을 결정한다”라는 조항과 원장선거관리위원회 규정 상의 ”선거인단 과반수 득표자로 당선인을 결정한다”라는 조항이 달라 혼선이 야기된다고 판단한 중선위는 국기원 사무국과 약정서를 맺어 “유효투표 과반수로 원장 당선인을 결정한다”고 교통정리를 하면서 만일의 사태에 철저하게 대비하는 듯했다.
국기원장선거관리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는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됐지만 선관위가 선거의 룰을 놓고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원칙론에 가로 막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지겠느냐는 안일한 태도가 결국 사태의 불씨를 제공한 셈이다. 결선투표에서 31표를 얻은 최영열 후보가 30표를 획득한 오노균 후보를 제치고 당선인으로 결정된 데는 무효 1표를 제외한 유효투표수를 61표로 산정했기 때문이다. 아쉽게 고배를 마신 오 후보측은 “선거 규정은 이사회의 승인 사항이다. 따라서 유효투표 과반수로 당선인을 결정한다는 약정서의 내용은 이사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며 선관위에 이의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선거를 좀 더 명확하고 공정하게 치르기 위해 체결한 약정이 논란에 기름을 붓는 결정적 실수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어쨌든 이사회 승인을 거치지 않은 사무국의 결정적 실수로 말미암아 이번 선거의 후폭풍은 더욱 거세질 조짐이다. 선거를 위탁 관리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사무국의 실수를 이유로 이번 선거의 무효를 선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헌법기관의 체면과 공신력에 심각한 손상이 가해지는 상황이니까 그렇다. 결국 사상 첫 선거인단 투표로 진행됐던 국기원장 선거는 법정에서 가려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체육계의 선거 문제도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체육 선거가 워낙 혼탁하고 파벌싸움이 드세 중립적인 선거관리위원회 위탁 문제가 자주 거론되지만 그게 반드시 능사일 수 없다는 게 여실히 입증됐다. 선거를 위탁받는 선관위는 공직자 선거 등 다른 선거와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약정서를 체결하는 게 상례인데 자칫 이게 논란의 불씨를 제공할 수도 있음이 드러났다.
최근 체육계 선거는 다수가 참여하는 선거인단 제도로 바뀌고 있다. 소수의 기득권층이 체육을 좌지우지했던 대의원제도를 적폐로 여기고 다양한 체육 주체의 참여를 통해 폐쇄적인 구조를 열린 구조로 바꾸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지금의 선거인단 제도는 체육계가 감내하기 힘든 고비용 저효율의 표본이라는 평가다. 선거인단 제도가 제 기능을 다하려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체육인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 우선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체육계에서 치러지고 있는 선거인단 투표는 과거의 대의원제도와 별반 차이가 없다. 무작위로 선거인단을 뽑는 게 아니라 여전히 소수의 체육 마피아들이 선거인단 구성에 관여하며 선거판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선거 비용만 더 드는 고비용 저효율의 선거제도는 이 참에 다시 한번 되짚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체육 현장의 목소리를 공정하게 대변할 수 있는 저비용 선거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할 때다. 문제는 늘 그렇듯 제도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