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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이지석기자]“헛소리하지마.”
그룹 넬 멤버들(보컬 김종완, 기타 이재경, 베이스 이정훈, 드럼 정재원)이 고등학생 때, 그리고 20대 초반에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록 밴드’로 살아간다는 것, 오랫동안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을 길게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남들이 들었을 때 헛돼 보이는 ‘꿈’을 얘기했고, 그때마다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최근 만난 넬의 보컬 김종완은 “늘 ‘헛소리하지마’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헛된 꿈이라도 꾸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그냥 살아져서 사는 것보다 꿈을 꾸고 사는게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때로 이 세상이 꿈꾸는 것 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각박해 보이지만, 헛된 꿈이라도 안 꾸는 것보다는 낫다. 물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넬은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꿈’을 이뤘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장수 록밴드이고, 멤버 교체 한번 없이 20년을 달려왔다. 수천명 정도 규모의 공연장은 순식간에 매진될 정도로 팬층도 두껍다. 김종완은 팀이 꿈을 이뤄온 과정을 ‘계단식’이었다고 표현했다.
“언젠가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하고 싶지만 지금처럼 계단식으로 올라가면 300년쯤 걸릴 거 같다. 바벨탑 같은 느낌이다.(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21살 무렵 음악하는 다른 팀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그들에게 들은 목표와 꿈은 어마어마했다. 이제 음악 시작한지 3달된 팀이 엄청난 앨범 판매량을 기대하더라. 그 와중에 클럽에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수는 2~3명이었다.(웃음) 목표를 크게 잡는 게 나쁘진 않은데 우린 일단 ‘열명을 채우자’가 목표였다. 그들이 다음 공연에 한명씩 데려오면 20명이 되지 않나. 그런식으로 꿈을 조금씩 새롭게 꿨다. 갑자기 더 잘 돼도 좋겠지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마다하진 않겠지만, 지금까지 해온 발전 속도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이어 김종완은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릴 좋아해주고, 더 깊이 있게 좋아해주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 음악이 더 늘고, 음악에 대한 열정 커지면 그것만으로도 기쁠 거 같다”고 덧붙였다.
꿈을 이룬 비결을 묻자 김종완은 “꿈을 꾼 것, 그게 꿈을 이룬 원동력이다. 우리에 대해 ‘저러다 말겠지’, ‘저러다 끝나겠지’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너무 많은 팀이 중간에 해체하니까. 우리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우리끼리 가고 싶은 방향, 이루고 싶은 꿈을 얘기하며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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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은 후배 밴드에게 “부럽다. 넬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 김종완은 “21세 때 인터뷰를 했는데 ‘한국 팀 중 롤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다. 지금 같으면 말을 가리겠지만 그땐 ‘한국에 롤모델이 없다’고 대답했다. 실제로 그랬다. 좋은 음악이 1순위이지만 멋있게 성공하고, 큰 공연장에서 공연도 하고 싶은데, 그런 롤모델이 없었다. 넬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들을 때 우리가 잘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우린 아직 음악의 힘을 믿는다. 우리 스타일상 방송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음악에만 집중하는데, 다른 이슈 없이 음악 만으로 공연장을 채울 수 있고, 계속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나간다는 자부심은 세다”고 말했다.
정재원은 “대중이 모르는 노래를 들었는데 ‘이건 넬 풍(風)이다’, ‘이건 넬스럽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밖에 못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넬스럽다’는 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최근 넬은 타이틀곡 ‘오분 뒤에 봐’를 비롯해 총 9곡이 실린 여덟 번째 정규앨범인 ‘컬러스 인 블랙’(COLORS IN BLACK)를 발표했다.
“올 초 태국의 스튜디오에서 한 달간 먹고 자면서 음악작업을 했다. 색다른 환경에서 작업해보자는 생각으로 처음으로 시도해봤는데, 덕분에 압박감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음악을 느끼고, 즐길 수 있었다.”
태국은 10여년 전 넬 멤버들이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갔던 곳이기도 하다. 김종완은 “그땐 네 명 모두 풀빌라에 대한 로망 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수영장에서 술을 마실 수 있고, 아무 간섭받지 않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을 수 있고, 그러면서 진솔한 얘기도 할 수 있는 장소잖나. 요즘도 쉴 때는 멤버들과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편”이라고 말했다.
넬 멤버들은 일 할 때뿐만 아니라 쉴 때도 함께할 정도로 여전히 돈독한 우정을 자랑한다. 김종완은 “음악을 할 땐 동료지만, 음악 외적으로는 친구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오래가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작업을 하지 않을 때도 친하게 지내고, 일적으로 충돌되는 부분은 친구로서 풀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팀의 또 다른 장수 비결이 있다면, 음악을 향한 열정이다. 김종완은 “멤버들 모두 굉장히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한다.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어 하는 욕구도, 배우고 싶어 하는 욕구도 크다. 남들이 볼 땐 거창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음악을 위해 삶에서 포기해야하는 부분도 많은데, 네 명 모두 그런 것들을 감수하고 음악을 계속 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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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스페이스보헤미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