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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리야드 메트로 현장을 방문한 모습. 제공 I 삼성전자

[스포츠서울 김태헌 기자] 2014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갑작스런 투병이 시작되자, 전 세계 언론은 ‘삼성 위기설’을 잇따라 보도했다. 수십년 간 그룹을 이끌어 온 카리스마 있는 총수의 부재가 글로벌 기업 삼성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란 부정적 예측이었다.

◇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해결사’로 나선 이재용

그룹의 위기에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섰다. 이 회장의 와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 부회장이 ‘삼성의 위기’ 해결을 위한 해결사로 나서야 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자괴감에 빠진 임직원들을 독려해야 했고, 글로벌 위기 속에 경쟁력을 잃거나, 사업 시너지가 약한 계열사들을 정리해 그룹의 전체적인 경쟁력을 높여야 했다.

2014년 11월 이재용 부회장은 한화가 삼성탈레스 인수 의사를 타진하자 아예 삼성탈레스의 모회사인 삼성테크윈 계열사 지분(32.4%)을 인수해 줄 것을 역제안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또 삼성전기의 모터와 파워모듈, 전자가격표시기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도 분사시켰다. 이 부회장의 이 같은 결정은 IT와 전자, 반도체 등 그룹내 시너지 효과가 있고, 미래가 밝은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그렇게 이재용 부회장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삼성 ‘제3의 창업’을 위한 혁신을 이어나간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기 분사 직전 임원들을 만나 “삼성전기 분사를 통해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고, 분사된 기업들은 전문가 집단이 경영하면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분사 필요성을 역설했다. 체면상 그룹이 계열사들을 마지못해 끌고 가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경영 효율성을 위해 ‘실용’을 선택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그 동안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경영의 기본을 특히 중요시 해왔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미·중 무역 갈등, 일본의 대(對)한국 반도체 소재 부품 수출 규제·백색국가 제외 등 대외적 위기 상황 속에도 해외 출장과 현장 방문을 늘려가고 있다.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는 의지다. 실제 이 부회장이 일본을 찾아 경제계 인사들과 잇따라 만나며 삼성의 반도체 위기는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분석이다. 일본 기업의 우회 수출과 유럽 기업들의 대체품 확보, 국내 기업들의 소재부품 국산화도 이 부회장이 현장에서 찾아낸 결과물이다.

이처럼 이재용 부회장은 문제가 발생하면 전문경영인에게 문제 해결을 종용하거나 피하는 대신, 직접 나서 문제를 해결하고 경영진들과 토론을 통해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직원들과 만나 소통하기를 즐기는 것으로도 유명해 구내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사내 미용실에서 머리칼을 자르는 모습도 여러 차례 목격됐다.

이재용 부회장의 이 같은 경영방식은 삼성의 그룹 문화를 ‘상명하복’의 군대식 문화에서 창의적이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로 탈바꿈 시켰다. 직원들과 소통을 위해 이 부회장은 직원들의 말을 절대로 끊지 않고 경청하고, 반대되는 주장도 끝까지 듣고 대답한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이 부회장은 각종 회의에서 자신의 뜻과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일단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난 뒤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을 즐긴다”며 “오너의 권위주의 대신 합리성을 더욱 중요시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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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SSAFY(삼성 청년 SW 아카데미)를 방문해 참가자들과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 I 삼성전자

◇ 글로벌 네트워크로 ‘위기극복’

이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은 의전이나 격식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임직원들의 보고를 스마트폰 문자로 받고, 문자로 의사결정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건희 회장이 비서실을 통해 업무를 보고 받던 것과 달리 이 부회장은 부서장과 직접 소통하며 수시로 전화를 걸고, 진행상황을 체크하며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이외에도 이재용 부회장은 캐리어 가방 하나를 끌고 혼자 출장을 떠나거나, 항공기 이코노미석을 타는 모습이 수차례 목격되기도 했다. 이처럼 삼성의 새로운 리더 이재용 부회장은 화려한 격식보다 실용적 사고를 우선시하는 그룹 총수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 내에서 20여년 간 근무하며 전 세계 고객사들을 만나 글로벌 네트워크도 탄탄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얼굴 역할을 해 올 정도로 인맥이 넓다. 이는 눈앞의 이익보다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중요시하는 철학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이 같은 인맥은 최근 위기에 놓인 삼성전자를 수 차례 구출하기도 했다. 특허 소송 전을 다툼없이 합의했고, 글로벌 기업의 인수합병도 성사시켰다. 이 부회장은 2002년 국내 인사로는 처음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앨런앤드코 미디어 콘퍼런스(선밸리 콘퍼런스)’에 초청받아 2011년을 제외하고 2016년까지 매해 이 행사에 참석해 왔다. 이 콘퍼런스는 미국 투자은행 앨런앤드컴퍼니가 1983년부터 개최하는 비공개 행사로 초청장을 받은 인사만 참여할 수 있으며, 이 부회장은 그간 이 콘퍼런스에서 애플 팀 쿡, 테슬라 일론 머스크, 구글 래리 페이지,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 IBM 지니 로메티 등 글로벌 기업 CEO들과 만나 사업을 논의하고 교류해 왔다.

이 콘퍼런스에는 글로벌 리더들이 모인만큼 기업간 갈등 해소는 물론 정보교류, 기업 인수합병 등에 대한 구체적 논의도 오가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 관련 소송도 2014년 콘퍼런스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팀 쿡을 만나면서 기업 상호간 소송 취하로 이어졌다. 아울러 이재용 부회장은 2016년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IBM 지니 로메티 CEO 겸 회장에게 AI(인공지능)에 대한 조언을 듣고 AI분야 스타트업인 ‘비브 랩스’를 인수했으며, 애플 ‘시리’에 대응하는 ‘빅스비’를 ‘갤럭시S8’에 최초로 탑재하기도 했다. 또 페이스북 마크 저커버그는 콘퍼런스에서 이 부회장과 만난 뒤 미국 본사임원 등 약 40명의 임·직원과 함께 삼성전자를 찾기도 했다.

올해 8월 7일 미국 뉴욕에서 공개된 ‘갤럭시노트10’ 언팩 행사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사티아 나델라가 직접 노트10에 탑재된 MS 서비스를 설명하기도 했는데, 나델라 역시 2016년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이 부회장과 만나 관계를 이어온 것이 이번 행사 참석 배경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소통을 기반으로 한 인적 네트워크가 글로벌 위기 속의 삼성을 여러차례 구해냈다”면서 “이제 기업들도 서로 경쟁관계가 아닌 협업을 선택하는 것이 기업의 힘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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