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구광모 (주)LG 대표이사 회장(사진 가운데)이 지난 8월 차세대 OLED 시장 선도를 위한 핵심 공정 기술인 ‘솔루블 OLED’ 개발 현황에 대해 연구개발 책임자들과 논의하고 있다. 제공 I LG그룹

[스포츠서울 김태헌 기자] LG그룹이 구광모 회장 체재 이후 ‘경쟁’하는 조직으로 거듭 태어났다. 전반적인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올해 3분기 LG전자는 예상을 뛰어넘는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며 역대 3분기 중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했다. 연간 기준 LG전자는 3년 연속 매출 6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재계에서는 LG전자가 이 같은 ‘깜짝’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데는 ‘젊은’ 구광모 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그룹 전반에 뿌리내린 결과라고 분석한다. 그동안 전대 구본무 회장 등이 ‘조용한 경영’과 ‘인화(人和)’를 강조했다면, 40대의 구광모 회장은 거대 그룹의 생존을 위해 ‘경쟁’과 ‘신상필벌(信賞必罰)’을 꺼내 들었고, 경쟁 기업이 LG의 이익을 침해하면 소송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 취임 1년 반 만에 ‘생존’ 키워드 꺼내든 구광모

“앞으로의 몇 년은 생존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 9월 경기도 이천 LG인화원에서 열린 LG 최고경영진 ‘사장단 워크숍’에서 그룹의 위기를 처음 언급했다. 이 자리에서 구 회장은 “L자형 경기침체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의 위기가 온다”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구 회장은 취임 이후 처음 열린 워크숍에서 ‘덕담’ 대신 사장단에게 ‘위기감’을 건네며 그룹 내 변화를 예고한 것이다.

구 회장은 또 이 자리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근본적인 경쟁력을 빠르게 확보하고 사업 방식과 체질을 철저하게 변화 시켜 나가야겠다”라며 “LG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근본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위해 사장단께서 몸소 ‘주체’가 되어 실행 속도를 한 차원 높여달라”고 덧붙였다. 이어 구 회장은 “제대로, 그리고 빠르게 실행하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다는 각오로 변화를 가속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구 회장의 경고와 위기감은 최근 LG그룹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과 미래 먹거리 부재라는 위기감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3분기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하긴 했지만, LG전자의 대표적 상품이었던 대형 LCD(액정표시장치) TV는 중국에 밀려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또 스마트폰은 연이은 신제품 발표에도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여전히 존재감이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LG화학의 배터리 사업은 글로벌 1위인 중국의 CATL과 시장 점유율 차이가 2배 이상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LG디스플레이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929억 원(연결기준)으로 전년 대비 96.2% 감소했으며, 이 때문에 구조조정을 통해 전체 임직원의 25%가량인 5000여 명의 인력을 감축해야 했다.

사진_사장단 워크샵
구광모 (주)LG 대표이사 회장(사진 오른쪽)이 지난 9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LG인화원에서 열린 사장단 워크샵에 참석해 권영수 (주)LG 부회장, LG인화원 조준호 사장 등 최고경영진과 대화하며 이동하고 있다. 제공 I LG그룹

◇ ‘확’ 달라진 LG…‘인화’에서 ‘경쟁’으로

그간 인화를 내세웠던 LG그룹은 좀처럼 경쟁사들과 다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지만, 최근의 LG그룹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삼성전자·SK이노베이션 등 국내 기업은 물론 중국과 유럽 가전사들에도 ‘글로벌’ 한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그룹의 이익이 침해당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라는 메시지를 대내외적으로 공표한 셈이다.

또 적극적으로 자사 상품을 홍보하며, 경쟁사 제품의 단점은 부각해 알리는 공격적 마케팅 전략도 펼친다. LG전자 고위 임원이 “삼성전자의 QLED(퀀텀닷발광다이오드) 8K TV는 화질 선명도 국제 기준을 밑도는 4K 수준에 불과하다”라며 베를린 국제가전박람회(IFA)에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가 하면, TV 광고를 통해 경쟁사 제품을 ‘저격’하기도 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LG전자는 삼성전자를 표시광고법 위반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기도 했다. 신고서에는 삼성전자의 ‘QLED TV’가 LED(발광 다이오드) 백라이트를 사용하는 LCD(액정표시장치) TV임에도 QLED라는 자발광 기술이 적용된 것처럼 소비자를 오인케 하는 허위과장 표시 광고라는 내용을 담았다.

그뿐만 아니라 LG전자는 지난 6일(현지 시간) 독일 만하임(Mannheim)지방법원과 뒤셀도르프(Dusseldorf)지방법원에 중국 전자 회사 티시엘(TCL)사를 상대로 휴대폰 통신기술 관련 특허 침해 금지 소송도 제기했다. 소송의 핵심은 TCL이 판매하고 있는 피처폰과 스마트폰에 적용한 일부 기술이 LG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LTE 표준특허’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소송의 쟁점이 된 표준특허는 총 세 가지로 모두 휴대폰에서 LTE 통신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기술이다.

앞서 LG전자는 지난 4일(현지 시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지방법원에 하이센스(Hisense)를 상대로 TV 관련 특허침해 금지소송을 제기했다. LG전자는 미국에서 판매 중인 대부분의 하이센스 TV 제품이 LG전자가 보유한 특허를 침해했다며, 특허침해 금지 및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LG전자는 피고에 하이센스 미국법인 및 중국법인을 모두 포함해 향후 판매 금지까지 염두에 뒀다. 이외에도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 배터리 핵심 인력을 빼갔다는 주장과 함께 올해 4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 비밀 침해와 특허 침해 등으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처럼 LG그룹이 주력 사업의 기술 우위를 놓고 경쟁사와 소송을 이어가는 이유는 LG그룹의 시장을 경쟁사가 점차 잠식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으로 해석된다. 실제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은 글로벌 TV 시장 점유율에서 삼성전자(29%)가 LG전자(16.4%)를 뛰어넘는 것으로 분석했으며,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TCL이 지난해 글로벌 시장에 1500만 대가 넘는 휴대폰을 판매한 것으로 추정했다. 또 하이센스는 전 세계 TV 시장에서 올해 상반기 판매량 기준 4위를 차지한 TV 업체로 중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TV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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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주)LG 대표이사 회장(사진 오른쪽)이 지난 8월 미래 소재·부품 개발 현황을 살피기 위해 대전 LG화학 기술연구원을 방문했다. 제공 I LG그룹

◇ 인재와 기술 확보가 ‘그룹 미래’

구광모 회장은 이 같은 경쟁사 견제와 함께 인재 육성을 통한 미래 기술 확보에도 집중하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 10월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LG인화원에서 LG가 미래 사업가로 육성 중인 100여 명의 젊은 인재를 만났다. 구 회장은 올해 2월과 4월 한국과 미국에서 이공계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한 ‘테크 콘퍼런스’에 참석해 R&D(연구개발) 인재 확보에 공을 들인 데 이어, 또다시 미래 준비 차원의 젊은 사업가 육성을 위한 교육 현장을 찾은 것이다.

구 회장은 이날 인재들과 만찬을 함께하며 “꿈을 크게 갖고 힘차게 도전하고, 더 큰 미래를 위한 성장에 집중해 주시기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여러분이 성장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고객을 위해 흘린 땀과 노력이 LG의 미래라는 걸 꼭 기억해 달라”고 당부한 뒤, “여러분이 사업가로서 필요한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의미 있는 그리고 용기 있는 도전을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광모 회장은 그룹의 미래 먹거리 준비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하반기 취임 후 첫 현장 방문지로 선택했던 마곡 LG사이언스파크를 비롯해 평택 LG전자 소재·생산기술원과 대전 LG화학 기술연구원 등 LG의 미래 성장을 위한 R&D 현장과 미국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기업 벤처 캐피탈인 LG테크놀로지 벤처스를 찾기도 했다.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현재 자율주행, AI(인공지능), 로봇, AR(증강현실)·VR(가상현실), 바이오 등 그룹의 미래 준비 차원에서 신기술 및 역량 확보를 위해 13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특히 LG그룹은 그간 재임 기간을 보장하는 대표적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현직 대표이사가 중도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지난 8년간 LG디스플레이를 이끌었던 한상범 부회장이 대규모 적자에 책임을 지고 자진해서 사퇴했고, 이어 취임한 정호영 사장은 높은 수준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한 회장의 사퇴는 ‘자진’ 형식을 취했지만, 재계에서는 사실상의 경질로 보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사업의 효율화를 위해 과감한 구조조정은 물론 생산기자 해외 이전이나 기업 청산 등 특단의 조치도 과감히 선택했다. 지난 4월 평택의 스마트폰 국내 생산라인을 베트남 하이퐁으로 이전했으며, 올해 초에는 LG전자의 연료전지 자회사 LG퓨얼셀시스템즈를 청산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LG그룹은 전자·화학·통신 서비스 등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시장 주도권을 확대할 계획이다.

LG그룹의 한 임원은 “외부에서 보는 것처럼 내부가 그렇게 급박하게 변하는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예전과 달리 그룹 분위기가 변한 것은 맞고, 좀 더 젊어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 LG그룹의 연이은 소송전과 관련해 “오너가 바뀌었기 때문에 경영 스타일에 변화가 온 것으로 본다”며 “이는 현재 재계 전반에 부는 위기감을 LG그룹 역시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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