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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다큐인사이트-개그우먼’에 출연한 김상미 피디, 개그우먼 김지민, 박나래, 오나미(위에서부터) 출처|KBS

[스포츠서울 안은재 인턴기자] “안시켜도 나오는 겉절이보다 시켜야 나오는 칼국수가 되고 싶었어요.”

‘개그계의 대모’ 이성미부터 송은이, 김숙, 박나래, 김지민, 오나미까지, 국내 내로라하는 개그우먼과 KBS2‘개그콘서트’ ‘스탠드업’ 등을 연출해온 김상미 PD가 대한민국 개그우먼의 현주소를 18일 방송된 KBS 1TV ‘다큐 인사이트-다큐멘터리 개그우먼’에서 되짚어봤다.

김상미 피디는 KBS 예능 피디로 KBS 2TV 예능프로그램 ‘스탠드업’에서 박나래와 호흡을 맞췄다.

그는 “신인 개그우먼과 ‘개그콘서트’ 조연출로 처음 만난 14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개그우먼의 역사는 40년이었지만 1990년 김미화가 KBS 코미디 대상을 받은 후 2018년 KBS 연예대상 이영자가 호명되기 까지 무려 28년의 세월이 걸렸다며 “너무 오래걸렸다”고 말했다.

박나래는 19금 개그로 개그맨 공채시험에 차석으로 합격하고 대한민국을 웃음으로 뒤집어 놓겠다는 포부를 가졌지만 입사 한 달만에 꿈이 깨졌다고 전했다.

그는 “‘개그콘서트’ 회의실에 출근했는데 서울대에 입학한 전교 1등이 느끼는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내 학교에서 전교 1등이었는데 모아놓고 보니 다들 전교 1등이었던 거다”라며 자신이 처음 만든 캐릭터도 비호감이라는 반응에 그만두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반대로 ‘미녀 개그우먼’이라는 타이틀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김지민은 “인지도가 올라갔는데 악플과 욕을 너무 많이 먹었다. 왜 개그우먼이 됐어? 뭐 때문에 뽑힌 거야? 개그우먼이 왜 예쁜 척해? 언제 웃길 거야? 삶이 모순이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지민은 “나를 시점으로 나 같은 캐릭터를 계속 뽑더라. 그들보다 잘하지 않는 이상 교체가 되는 건 당연한거다”라며 “어느 순간 물리적으로 다 그들도 교체가 돼 있더라. 자연스럽게 코너가 없어지면서 2년 후에 방송이 하나도 없더라”라고 말했다.

오나미는 김지민과 정반대 캐릭터를 맡았다고. 오나미는 “귀엽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귀엽다는 말이 그거구나. 개그맨 되고 나서 알았다”라며 “첫 대사가 ‘넌 뭐야?’하면 ‘난 여자다’ 하는데 그렇게까지 터질 줄 몰랐다”라고 씁쓸해하면서도 “동기들 중에 그나마 빨리 오나미라는 이름을 많은 분들에게 알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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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1‘다큐인사이트-개그우먼’에 출연한 개그우먼 이성미, 김숙. (위에서부터) 출처|KBS

대한민국 1호 개그우먼 이성미는 동기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고.

이성미는 “저는 반은 남자였던 것 같다. 남자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 상황이었고 따라가려 열심히 뛰어다녀야 했다. 여자라 저것 밖에 못한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악착같이 연습을 많이 했다. 왜냐하면 잘못하면 여자 전체를 독박을 씌우는 거다. 잘해야 다음에 들어오는 후배들도 잘 자리 잡을 수 있고 그래서 잘 다져놔야겠다는 생각은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눈에 들어온 후배는 송은이라고 밝혔다.

90년대 실내 세트장에서 하는 정통 코미디에서 야외 버라이어티까지 예능프로그램도 다양한 포맷으로 바뀌면서 개그우먼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에서는 강한 캐릭터와 망가지는 몸개그 등이 웃음을 유발했기 때문. 김상미 피디는 “한때 ‘여자들은 재미가 없잖아’ 라는 말이 통용될 때가 있었다. 완전히 망가지지 않으니까. 몸을 사리니까 하는 이유도 붙었다. ‘재미있으면 다 섭외하지’ 라고 말했던 것 같다. 정작 새로운 시도를 안 하고 성공한 방송을 서로서로 따라하며”라고 회상했다.

김상미 피디는 “대부분 남성 MC들이 캐릭터를 이뤄 형 동생하는 분위기에서 약간 변주가 필요할 때 예쁘고 상큼한 걸그룹들이 게스트로 초대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자리에도 개그우먼이 설 자리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김숙은 당시 은퇴를 생각했지만 송은이를 비롯한 선배들이 “까불지 말고 그냥 해”라며 그를 다독였다고 털어놨다. 당시 송은이와 김숙 등은 MBC 에브리원 ‘무한걸스’(2013)로 활동했지만 그 입지는 좁았다.

2012년부터 관찰 예능이 대세가 되면서 육아·가족 예능이 흘러가면서 결혼하지 않은 개그우먼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김숙은 “그 때 우리 기획사 사장님이 그랬다. ‘일이 없는 게 당연하다. 넌 시부모도 없고 남편도 없고 애도 없어. 지금 방송 나갈 데가 없다’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송은이는 “아예 섭외가 없었다. 8개월이 지나니까 체감이 됐다. 20년 넘게 선택받아 오고 방송을 해왔는데 부름받지 못하니까 의미 없는 존재가 되는 건가. 방송을 할 수 없게 되는 건가”하는 생각에 2015년 팟캐스트로 돌파구를 찾았다고 전했다.

송은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인데 그 자체를 할 수 없어서 힘든 걸 알았고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지’라는 생각에 김숙과 함께 팟캐스트 ‘비밀보장’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송은이의 선택이 새로운 길을 열었다.

김상미 피디는 “송은이는 아예 시스템을 본인이 만들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여성 개그맨들을 모아 새로운 예능을 선보였다. 거기에 시청자가 열광했다는 건 그런 예능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다”라고 설명했다.

김 피디는 개그우먼들이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로 달라진 시대상을 꼽았다.

그는 박나래 안영미 등의 19금 몸개그에 대해 “기존에 소비된 몸이 아니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거다. 너희 보라고 하는 게 아니고 내 만족을 위해서 하는 거다. 관점이 뒤집어진 거다. 대중도 ‘당당한 모습 자체가 아름답다’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김숙도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박나래가 그런 춤을 추면 다들 얼굴을 돌렸다. 안영미도 편집되거나. 그런데 이제 이상하지 않다. 그들은 시대를 바꾼 사람 아닐까요”라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eunja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