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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의원으로 거듭난 이용 전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 15일 국회의사당에서 가진 스포츠서울 창간35주년 인터뷰에서 기자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 “분초 다툰 체육인 시절…정치는 마라톤 하고 싶다.”

미래한국당 비례대표로 21대 국회에 입성한 이용(42) 전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감독은 당선 직후부터 ‘체육의 자율성’을 화두로 한 공약 이행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를 만난 건 국회 입성 보름이 지난 15일이었다. 이날 국회 일정이 오락가락했고 국가대표 선수 및 지도자 비대면 훈련을 인정하도록 하는 지침 개정 추진과 맞물리며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이용 의원은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인터뷰 약속 시각을 변경하기도 했다. 때마침 스포츠서울 창간 35주년 특집 인터뷰를 위해 국회의사당 본청에 있는 야당 원내수석실에서 만난 그는 초선 의원다운 열정과 패기로 가득했다. “아직도 감독이라는 말이 입버릇처럼 나온다”는 기자 말에 “그게 더 편하고 좋다. ‘전 감독’으로 계속 불러 달라”고 웃었다.

‘썰매 불모지’인 국내 현실을 딛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윤성빈의 스켈레톤 금메달, 봅슬레이 4인승 은메달 신화를 견인한 그는 금메달을 내려놓고 ‘금배지’를 달았다. 제법 잘 어울려 보였는데 이 의원은 “지난주 체육인 선후배와 식사 자리를 했는데 ‘초선답지 않게 말솜씨가 좋은 것 같다’며 덕담해주시더라”며 “하지만 한 번 체육인은 영원한 체육인이다. 정치인 이용으로도 초심 잃지 않고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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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권에서는 ‘초선 의원이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말이 나오더라. 국회에서 제2의 삶은 어떠한가?

아직도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정치계에 와보니 초선 의원은 열정은 있지만 구체적 방안을 꾸리는 데엔 어려운 점이 있더라. 난 앞서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무동력 스포츠를 한 선수이자 감독 출신이다. 그런데 정치는 마라톤을 하고 싶다. 체육인 출신으로 비례대표 초선하고 재선, 삼선 역사가 없다. 정치를 하다 보면 초선이 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 재선되면 당에서 어느 정도 입지를 갖고 조금 더 구체적 정책을 실현할 것이고, 삼선이 되면 상임위원장으로 더 이바지할 수 있다고 본다. 여당에 오선 안민석 의원이 계시지 않느냐. 그분도 삼선부터 당의 핵심 구실을 하면서 여러 정책을 펼쳤다. 이제 내 나이 (만으로) 마흔한 살이다. 삼선 해야 오십 대에 들어선다. 운동했을 때처럼 기초체력을 충실히 다지고 나중에 나만의 기술을 잘 펼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싶다. 초선 땐 체육인을 비롯해 현장 관계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

- 공교롭게도 오늘 국가대표 선수 비대면 훈련을 정식 훈련으로 인정하는 지침 개정을 끌어냈다.(2020년 국가대표 강화훈련 미구성 종목을 제외한 선수 및 지도자, 트레이너, 전담팀, 외국인초청사업지도자를 대상으로 월 최대 20일, 6월부터 보조금 지원 등)

최근 동,하계 체육인 50명과 만나 토론회를 열었다. 각 종목 대표 선수는 물론, 감독 등 지도자도 코로나19로 선수촌 입촌 훈련이 중단되면서 수당 외에 별도 소득이 없어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떤 선수는 편의점이나 예식장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어떤 감독은 대리운전한다더라. 곧바로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관계자를 만났다. 사실 감독 시절엔 만나 뵙기 어려운 분들이었다.(웃음) 정부가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에 빠진 소상공인 등을 돕기 위해 대책을 세우는 것과 다르게 내년 올림픽을 대비하는 선수에겐 관심이 저조한 게 아니냐고 했다. 예를 들어 초,중,고교도 온라인 비대면 수업을 하지 않느냐. 체육도 접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주요 종목에서 코치진과 선수가 비대면으로 훈련 프로그램을 주고받기도 하지 않느냐.

- 사석에서 봅슬레이·스켈레톤 옛 제자도 잠시 만난 것으로 안다. 제자에겐 ‘감독님’에서 ‘의원님’이 됐는데 반응은 어땠나.

제자들은 내가 정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웃음) 현재 대표 선수들이 2022 베이징올림픽까지 갈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이전까지 총감독으로 함께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왔다. 또 2018 평창올림픽을 치러보니 ‘다음 올림픽은 어떻게 준비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들더라. 그런 만큼 제자들은 내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에 실망스러운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봅슬레이 대표팀의) 원윤종이 내게 “감독께서 떠나셔서 아쉬운 건 있지만 결국 스포츠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체육인 출신) 누군가가 이런 도전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그 말에 고마웠고 용기가 났다.

[포토] 이용 총감독 \'윤성빈, 압박감  부담 없애야 한다\'
봅슬레이·스켈레톤 감독 시절 이용 의원. 사진은 지난 2018년 1월31일 평창동계올림픽 미디어데이에서 이용 전 감독이 윤성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승섭기자

- 국회의원 당선 이후 여러 체육인, 지인으로부터 축하 연락을 받았을 텐데 가장 가슴에 와닿은 말이 있다면.

두 가지가 기억이 남는다. ‘남들처럼 하지 마라’, 그리고 ‘체육인의 옷을 벗지 마라’다. 체육인으로 정치에 입문한 것이지. 정치인으로 입문한 게 아니기 때문에 국회의원 생활을 하는 동안 초심을 잃지 말라는 당부였다. 체육인의 옷을 벗는 순간 정치 생명도 함께 떨어져 나갈 것이라는 의미였는데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있다.

- 정치 도전을 두고 ‘체육계를 위해 입법권을 갖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만 썰매계에서 명예와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여러 이해타산이 오가는 정치권에 발을 내딛는 것을 두고 우려 목소리도 컸다. ‘도전해야겠다’고 결심한 정확한 시점은 언제였나.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고 나서다. 당시 썰매 불모지인 우리나라였지만 선수에게 안방에서 메달을 따내면 예산도 늘고 인프라 등 운동 환경이 개선되리라고 얘기하면서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메달을 손에 넣었지만 현실은 (예산, 지원 문제로) 훈련장조차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평창올림픽 때 남북 단일팀으로 나섰던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상황을 보면서도 안타까웠다. 단일팀 정책으로 일부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 기회를 놓치는 등) 희생했는데, 그 이후 체육과 관련해 정부 정책이 더 발전적으로 이뤄지기를 바랐다. 그런데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문체부 혁신위 카드를 앞세워 학교체육 축소, 합숙 폐지 등 엘리트 체육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았느냐. 선수에게 더는 동기부여를 해줄 수 없다는 것에 회의감이 들었다.

- 첫 행보로 눈에 띄었던 건 ‘학교 체육의 정상화’라는 비전을 품으면서 문체부가 아닌 교육부를 먼저 언급했는데.

생활체육이나 엘리트 체육 모두 한국 체육의 발전과 선진화를 위한 동력이 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 학교 체육은 사라지는 추세다. 체육은 학생이 살아가면서 기초적인 체력을 기르는 것은 물론이고. 공동체 의식 함양 등 전반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교육부 차원에서) 학부모와 학생에게 체육에 대한 새로운 동기부여를 매겨야 하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과거엔 체력장이라는 게 있었다. 체력장은 대입시험에 무시못할 점수항목이었기에 체육활동이 정말 활발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내가 학부모라도 국·영·수 위주로만 자녀 교육 할 것 같다. 체육시설을 늘려달라는 게 아니다. 방과 후 스포츠클럽 활동을 1년에 100시간을 하면 입시 점수에 5%, 200시간을 하면 10%를 각각 반영하는 식으로라도 동기부여를 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또 과거처럼 체육 시간에 운동만 하는 개념을 벗어나서 학생의 체지방 측정 등 건강을 체크하는 등 좀 더 당위성과 명분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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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형적인 변화도 필요해 보이는데.

요즘 트렌드에 맞는 언어사용이 시급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국위 선양’을 보자. 50년 넘게 체육을 하는 목적과 명분을 언급할 때 자라나서 훌륭한 선수가 되고 국가대표가 돼서 국위 선양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이런 분위기를 벗어나서 ‘스포츠 경제, 산업’이라는 말이 나왔으면 한다. 솔직히 많은 국민이 ‘왜 혈세로 엘리트 체육을 돕느냐’고 비판하시는 분도 계신다. 그런데 김연아나 박태환, 그리고 내 사랑스러운 제자인 윤성빈 등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건 경제가치로 환산하면 수천억에 달한다. 이렇게 산업적으로 더 접근하면 학교 체육, 엘리트 체육에 대한 인식도 변할 것이다.

- 앞으로 가꿔나가야 할 정치인의 삶,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이루고 싶다고 여기는 게 있나.

아무래도 과거 이에리사 의원서부터 추진해온 ‘체육인 복지법’이다. 정부와 문체부에서 체육인복지재단에 독립성을 줄 수 없다는 데서 통과되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 체육은 기형적으로 잘하는 선수에게만 모든 혜택이 돌아간다. 조금 부족하거나 계약직으로 생계 위협을 받는 선수나 지도자에게 더 나은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무래도 문체부나 대한체육회 등에서 모든 체육인에게 혜택과 기회를 제공하는 건 한계가 있다. 복지재단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면 기금이 들어오기에 살림살이를 키워서 더 많은 체육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꼭 복지재단 설립이 아니어도 좋다. 문체부 등에서 작게나마 기관을 세우고, 훗날 개정법을 통해서 독립성을 추구해도 가능한 일이다. 정치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과제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