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내가 ‘우리들의 블루스’에선 힘 빼고 했잖아. 언제 개성 강한 연기를 했어. 내가 연기를 아주 잘 하는 사람이라고~”

지난해 넷플릭스 영화 ‘독전2’로 만난 인터뷰 현장, “너무 개성 강한 연기에 갇히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오자 차승원은 다소 발끈했다. 유머러스하게 풀긴 했지만, 부정적인 연기 평가에 잔잔하게 유지했던 여유가 흐트러졌다.

개그맨 이재율이 ‘독전’을 활용해 차승원을 성대모사한 게 워낙 큰 밈으로 번진 시기였다. 차승원의 연기가 고착화됐다고 여겨졌다. 실제로 차승원은 “편견은 이재율 때문”이라고 예능에서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란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지만, 개성 강한 연기자란 것도 수긍되는 부분이 있었다. 독특한 화법과 목소리, 예능에서 줄곧 보여준 유머러스한 표정, 코미디 요소가 강한 연기를 수없이 선보였단 점에서 차승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분명했다. 코믹 배우라는 테두리가 있었다.

지난 11일 공개된 ‘전, 란’에 나온 차승원은 자신을 향한 편견을 부쉈다. 차승원이 맡은 역할은 선조다. 대중에겐 충신 이순신을 시기한 옹졸한 왕으로 인식되는 인물이다. 연산군, 인조와 함께 ‘조선 최악의 임금’으로 꼽히기도 한다. 반대로 역사학계에서는 용인술이 뛰어나고 전략적인 인물로 꼽힌다.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왕이란 평가다.

‘전, 란’ 속 차승원의 얼굴엔 모순적인 이미지가 여럿 담겨 있다. 궁을 버리고 떠난 몽진 과정에서 백성의 피난길까지 끊어버리려 했던 지점이나, 힘겹게 살아돌아와선 경복궁 재건에만 힘쓰는 모습, 백성의 지지를 받는 의병장을 시기하는 얼굴이 한 축이다. 백성이 궁에 불을 질렀다는 말에 “내 백성이 왜?”라고 반문하는 장면이나 보물이 나올 거라 믿은 관에서 코가 나오자 화들짝 놀라는 표정, 방정맞게 상을 뒤엎고 원하는 상소만 취사 선택하는 것이 또 하나다.

선조를 그린 차승원의 얼굴에는 현 시대의 지독한 권력자가 엿보인다. 백성의 안위보단 자신의 권세가 더 중요한 위정자이며, 백성을 한낱 도구로 밖에 대하지 않는다. 마치 소시오패스를 연상케 한다. 선과 덕으로 백성을 보살펴야 하는 상식적인 임금의 태도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철저히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놀랍게도 소통을 거부하는 나약함 속에서 왕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위엄도 느껴진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약한 심리 때문에 호위무사 종려를 맡은 박정민도 일단 바짝 수그리는 방향으로 캐릭터를 설정했다.

안타고니스트의 전형성을 깨뜨렸다. 철저한 악에 코미디를 고루 섞은 얼굴에선 어딘가 보편적인 인간의 이미지도 엿보인다. 코믹 배우의 한계도 직접 깨고 일어섰다. 반백살이 넘은 차승원은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 한계를 뚫고 나아가는 도전, 여러 후배 배우에게 귀감이 될 수밖에 없는 행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진지하지만 우스꽝스럽고 우습지만 그저 웃기게만 볼 수 없는 인물이다. 한국 영화 역사상 이렇게 다중적인 작품, 인물은 없었다. 차승원이 비열함녀서도 코믹하고, 진지하며 위엄있는 선조를 그려냈다”며 “평소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이긴 했지만, 이렇게 다중적인 모습을 그려낸 건 처음인 것 같다. 상당히 인상적이다”라고 평가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