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홀_스틸컷

[스포츠서울 | 정하은기자]11년 만에 마련한 서울 ‘내 집’이 한순간에 땅으로 꺼져버린다면 어떨까.

영화 ‘싱크홀(김지훈 감독)’은 이러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지하 500m 초대형 싱크홀로 신축빌라가 통째로 떨어진다는 가상의 상황을 그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연평균 900건의 싱크홀이 발생한단걸 고려하면 꼭 ‘남 일’ 같지만은 않은 재난물이다. 그럼에도 비장하거나 무겁진 않다. “힘든 요즘, 잠깐이나마 웃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김지훈 감독의 말처럼 ‘싱크홀’은 일촉즉발 재난 상황 속 개성 강한 인물들의 탈출기를 유쾌하게 그려냈다.

영화는 11년 만에 서울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동원(김성균 분)이 청운빌라로 이사 오면서 시작된다. 서울에 몸을 뉘 울 수 있는 집이 생겼단 것에 기쁜 마음도 잠시 이사 온 지 며칠이 지나자 곳곳에서 하자가 발견된다. 그러나 빌라 주민들은 집값 떨어질 걱정에 쉬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빌라 건물이 지하 500m 아래로 통째로 추락한다. 동원은 껄끄러웠던 괴짜 이웃 주민 만수(차승원 분)와 집들이에 온 직장 동료 김대리(이광수 분), 인턴 은주(김혜준 분)와 함께 싱크홀에 빠지게 된다. 예고도 없이 갑자기 빌라 한 동과 함께 지하 500m 아래로 떨어진 이들은 싱크홀을 탈출하기 위해 의기투합한다.

싱크홀

김지훈 감독은 재난에 과감히 코미디를 더했다. 재난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지만 마냥 긴박하고 진지하기만 하진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유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울릴 듯 어우러지기 힘든 두 장르를 섞음으로써 생길 수 있는 어색함을 김 감독은 배우들로 채워 넣었다. 차승원, 김성균, 이광수로 말이다. 등장부터 앞으로 펼쳐질 이들 특유의 능청스러운 위트가 어느정도 예상 가능하지만, 알고 봐도 재밌다.

“돈을 들인게 티나는 영화”라는 차승원의 재치있는 소개처럼, 재난 버스터다운 ‘보는 맛’도 풍부하다. 건물이 싱크홀에 훅 빠지게 된 데다 엎친 데 덮친 격 비까지 오며 침수 위기까지 맞는 500m 아래의 모습도 140억여 원 제작비가 투입된 대규모 풀 세트를 통해 구현해내며 관객에게 긴장감을 주는데 성공한다. 건물이 무너지며 발생하는 흔들림은 짐벌 세트의 인공지진을 통해 생생하게 구현했다.

힘을 모아 희망을 찾아 나서는 모습은 뭉클함을 안기고 구출 과정에서 차승원, 김성균의 절절한 부성애가 울컥함을 주지만 신파처럼 과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다만 싱크홀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힘을 빼고 그려내자 하니, 절박한 감정은 지상에서 생사도 모르고 애타게 기다리는 피해자 가족들의 몫으로 남겨져 그 간극 사이에서 감정 이입하기가 쉽진 않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유머를 챙긴 여름의 도심 재난물 ‘싱크홀’이 코로나라는 현실 재난 상황 속에서도 웃음과 감동을 전하기 위해 관객을 기다린다. 12세관람가로 11일 개봉했다.

사진 | 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