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나의 산소” 83세 원로 작곡가 임종수의 60년 음악 인생

[스포츠서울 | 임재청 기자] 대한민국 가요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 작곡가 임종수.그의 손에서 탄생한 ‘고향역’,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남자라는 이유로’ 등 수많은 명곡은 한국인의 삶과 함께 호흡해왔다.세월이 흘러도 그의 멜로디는 여전히 대중의 가슴속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이제 그는 자신의 음악 여정을 되돌아보며,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 처음 만난 거장, 음악 앞에서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

스포츠서울 스튜디오에서 만난 임종수 작곡가(83). 처음 그를 만났을 때, 임종수 작곡가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악수로 맞이했다. 연세가 드셔 거동이 다소 불편한 모습이었고, 질문에 대한 답변도 신중하셨다. 하지만 음악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그의 눈빛은 달라졌다.

- 60년 음악 인생을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이 곡을 만들 때 말이야, 가슴이 찢어질 듯했어.”

그는 곡의 한 소절을 직접 부르기 시작했다. 순간, 그의 얼굴에는 평생 음악과 함께 살아온 자부심이 가득했다. 비록 세월의 흔적은 그를 느리게 만들었지만, 음악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 ‘고향역’,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

1972년, 그의 첫 작품이자 대표곡이 된 ‘고향역’. 하지만 이 곡은 처음부터 순탄하게 탄생하지 않았다.

- ‘고향역’이 탄생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엔 가사가 달랐어요. 그런데 당시 방송 심의 규정이 너무 엄격해서, 이별·슬픔·아픔·고통 같은 단어가 들어가면 방송에 나갈 수 없었죠.” 그때 나훈아가 다가와 말했다. “이 멜로디가 너무 좋은데, 가사를 다 바꿔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가사와 노래는 대히트곡이 되었다.

그는 이 곡과 얽힌 한 가지 기억을 떠올렸다.“이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향토예비군 훈련장에서 김밥과 콜라를 먹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모여서 내 노래 *‘고향역’을 부르는 거예요. 그걸 듣고 있는데… 기쁨과 서러움이 함께 밀려와 눈물이 나더라고요.” 자신이 만든 곡이 사람들의 삶 속 깊이 스며들었음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한 남자의 사랑과 그리움

1976년, 무명가수 하수영과 함께 만든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 이 노래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어떤 마음으로 만드셨나요?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이 가사를 쓸 때,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지켜준 어머니와 헌신적인 아내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1996년부터 9년간 암 투병을 하다 2005년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내게 묻지 않았다. 왜 나를 택했느냐고. 나 역시 아내에게 묻지 않았다. 왜 나를 따랐느냐고.그것이 남편이라는 이름의 죄, 아내라는 이름의 희생. 그 아름다움의 시작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깊은 그리움이 묻어났다.

◇ 제자들과의 인연: 강문경에서 8세 신동까지

그는 단순히 명곡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후배 가수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전수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 많은 스타 가수들과 함께 작업해 오셨는데, 최근 스타로 떠오른 강문경 씨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전북 순창 출신의 고향후배 강문경은 중앙대학교 국악학과에 진학했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자퇴해야 했어요. 그때 나를 만나 트로트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죠.” 그는 강문경에게 ‘아버지의 강’을 선물했다. 이후 5년 동안 직접 음악 지도를 하며 실력을 쌓게 도왔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무대에서 빛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뻐요. 앞으로도 좋은 곡을 주고 싶습니다.”

또한, 그는 최근 8세 신동 유지우에 대한 특별한 생각을 전했다.

“내 곡 ‘정녕’을 4살 때부터 부르더군요. 그 순수한 목소리를 듣고 감탄했어요. 유지우는 어린 나이에도 신동처럼 참 잘 부르더라고요.” 그는 앞으로도 유지우를 위해 특별한 곡을 만들 계획이다.

◇ 2025년 신곡: 남진 데뷔 60주년 기념 ‘내 사랑 시’

그는 여전히 창작을 멈추지 않는다.

“5년 동안 공들여 작업한 곡이 있어요. 바로 남진의 데뷔 60주년 기념곡 ‘내 사랑 시’입니다. 한국 가요계의 한 시대를 함께한 남진을 위해 특별히 준비했어요.” 이 곡은 오랜 시간 다듬어진 끝에 올해 발표됐다.

◇ 미완성 프로젝트: 뮤지컬 ‘고향역’의 꿈

그에게는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다. 바로 뮤지컬 ‘고향역’ 프로젝트다.

“2022년대 초,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13곡으로 구성된 뮤지컬을 제작했어요. 그런데 지역 공연에 그쳐버렸죠. 하지만 공연을 보던 자신과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이 작품이 더 큰 무대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여전히 ‘고향역’을 기반으로 한 뮤지컬을 전국으로 확장하고 싶은 열망을 품고 있다.

◇ 그가 남긴 주옥같은 명곡들

임종수 작곡가는 ‘고향역’과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외에도 400여 곡 이상의 명곡을 작곡했지만, 정작 본인은 “세어본 적도 없다”고 말할 정도로 창작에 몰두해왔다.

대표곡 리스트 ‘고향역’ (나훈아)​ ‘대동강편지’ (나훈아)​ ‘불교’ (나훈아)​ ‘첫눈’ (나훈아)​ ‘모르리’ (남진)​‘빈지게’ (남진)​ ‘어머니’ (최진희)​ ‘가져가’ (최진희) ‘여정’ (최진희)​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하수영)​ ‘부초’ (박윤경)​ ‘착한여자’ (인순이)​ ‘남자라는 이유로’ (조항조)​ ‘정녕’ (조항조)​ ‘사랑이 남아있을 때’ (문희옥)​ ‘사랑해 말도 못 하는’ (이창용)​ ‘당신께 넘어 갔나봐’ (한서경)​ ‘벤치’ (서수경) ‘옥경이’ (태진아) ‘아버지의 강’(강문경)등 수많은 명곡을 작곡하며, 수십 년간 한국 가요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 “나는 유명세를 원하지 않았다, 오직 음악뿐”

“나는 유명해지고 싶은 욕심이 없었어요. 음악은 나의 산소와 같았어요. 산소가 없으면 죽는 것처럼, 나는 음악 없이는 살 수 없어요.”

그의 멜로디는 세월이 흘러도 대중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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