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안 잡으면 ‘저승행’
초특급 배우들이 펼치는 ‘차력쇼’
모두가 원하는 해피엔딩
3월22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홀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100억 년 경력자의 ‘지옥 피싱’이 시작된다. 주체할 수 없는 저세상 텐션에 혼을 빼앗긴다. 기괴한 소용돌이에 점점 빨려 들어가, 결국 이름을 세 번 외친다. “비틀쥬스, 비틀쥬스, 비틀쥬스!”
뮤지컬 ‘비틀쥬스’가 새해에도 매진 행진을 이어가며 비상(飛上) 중이다. 등장부터 범상치 않은 ‘비틀쥬스’의 등장과 동시에 폭발하는 관객들의 환호로, 일단 공연장의 지붕을 날린 후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무대 위 세상은 팀 버튼 감독의 1988년 동명 영화의 익숙함에 뮤지컬만의 색을 입혀 상상의 폭을 확장했다. 특히 개그맨 이창호의 각색 참여로 한국만의 ‘매운맛’이 더해졌다는 것. 2021년 세계 최초로 라이선스 공연으로 한국에 상륙, 4년 만에 다시 오른 무대에서는 거침없는 말재간으로 유쾌·상쾌·통쾌한 가스라이팅을 이어간다.
관객들의 정신을 쏙 빼놓는 배우들의 파워풀한 카리스마를 빼놓을 수 없다. 100억년간 저승과 이승 사이에서 투명한 존재인 ‘비틀쥬스’ 역 정성화·정원영·김준수가 무면허 저승 가이드로 나선다. 유령을 두려워하지 않는 겁 없는 소녀 ‘리디아’ 역 홍나현·장민제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정으로 초대한다.
이 밖에도 무서운 유령 지망생인 신참 유령부부 ‘바바라’ 역 박혜미·나하나와 ‘아담’ 역 이율·정욱진이 온기를 채운다. 사랑 표현에 서툰 리디아의 아버지 ‘찰스’ 역 김용수·김대령이 뜨거운 포옹을 전한다. 긍정전도사 ‘델리아/미스 아르헨티나’ 역 전수미·윤공주가 순수한 사랑의 의미를 전한다.

◇ ‘한계의 벽’ 깨부순 ‘저세상 텐션’…경이롭도다!
‘비틀쥬스’는 무대의 한계를 파괴했다. 스크린을 찢고 나와 관객과 실제로 마주한다. 영화·애니메이션·서커스·인형극·마술쇼·콘서트의 결합으로써 공연에서의 한정된 규모를 무너뜨린 표본이다.
공연장의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기괴하지만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음악이 관객들을 맞이한다. 귀에 박히는 넘버들은 웃음과 재미, 감동으로 뇌 정지를 일으킨다. 인터미션도 기묘한 이야기의 연속이다. 공연 후에도 잔잔하게 퍼지는 멜로디가 스토리의 여운을 잇는다.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진짜’ 실사판이다.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배경으로 몰입도를 높인다. 역동적인 전동무대를 사용해 장면별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LED 화면과 어우러진 세트는 정리 정돈이란 개념을 과감하게 버리고 삐뚤삐뚤한 선을 연결해 입체성을 더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예고 없이 등장하는 불꽃쇼와 마술쇼 등 화려한 퍼포먼스는 그저 맛보기에 불과하다. 천둥소리와 함께 번쩍이는 조명과 특수효과가 ‘저승문’을 두드린다. 9명의 ‘비틀쥬스’가 합창할 땐 그림자를 활용해 영화적 효과까지 부각한다.
휘몰아치는 ‘저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무대 위에서 ‘비틀쥬스’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지옥의 문을 그리는 듯하다. 놀이공원에 있는 ‘유령의 집’에 입장했는데,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 대체 불가 ‘국보급’ 캐스트…무거운 관극예절 잊게 하는 ‘폭소 대잔치’
배우들의 차력쇼도 빠질 수 없는 볼거리다. 숨 쉴 틈 없이 빠른 템포의 넘버들을 완벽히 소화, 관객의 손을 잡고 150분 달린다. 관객이 숨을 헐떡이면 ‘한국의 매운맛’을 첨가한 대사/애드리브로 정신줄을 잡아준다.
김준수는 자신만의 ‘비틀쥬스’에 대해 “목소리부터 사람이 아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사실이다. ‘천의얼굴’ 정성화와 ‘햇살’에서 새롭게 ‘미(美)친 자’로 떠오른 정원영의 남다른 텐션으로 인해 뮤덕들 사이에서는 기본 3회 관극이 추진되고 있다.
앙상블과 함께하는 무대는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제멋대로 막춤은 대책 없이 자유분방한 악동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낸다. 지칠 줄 모르는 발재간과 쉴 새 없이 떠드는 ‘비틀쥬스’들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애니메이션을 뚫고 나온 듯한 2막의 대표 넘버 ‘저 아름다운 소리’는 배우 한 명 한 명의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는 재미가 있다. 대형 가면과 퍼펫의 등장은 다소 과격한 ‘동심의 세계’로 이끈다.

◇ 이 시대 ‘외톨이’에게…서툰 사랑도 표현하라!
‘비틀쥬스’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꼽힌다. 하지만 공연장을 나설 때 웃음보단 뭉클함이 급습한다. 장면 곳곳에 숨어있는 기다림 속 ‘위로’와 ‘화해’의 메시지가 심장을 지배한다.
정체불명의 유령 ‘비틀쥬스’는 사악한 악마로 불린다. 첫 만남에서 친근했던 이들조차 그를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괴짜 취급한다.
‘비틀쥬스’는 저승과 이승 사이에서 오갈 데 없는 외로운 인물이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만, 인간이 그의 이름을 세 번 불러야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100억 년이 지나서야 희망의 목소리가 들렸다면, 이에 따른 희망과 열망은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간절함의 정도가 커진다.
다시 죽지도 살 수도 없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비틀쥬스’. 저승과 이승 사이의 외톨이였던 그가 리디아와 아담·바바라 부부를 만나 기괴한 쇼를 펼친 건, 친구를 사귀기 위한 자신만의 오디션인 건 아닐까?
현시대 인류가 직면한 위기 중 한 장면을 보여준다. 인간의 이기주의와 정치적 관계 구도에서 생겨난 ‘투명 인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길 기다리고 있다. ‘비틀쥬스’는 따뜻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손을 내밀라고 노래한다.
중독성 짙은 강렬한 뮤지컬의 힘을 보여주는 ‘비틀쥬스’는 오는 3월22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 홀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