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우
2006년 1월12일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 신상우 신임 총재(오른쪽)가 취임식을 마친 뒤 박용오(왼쪽)전 총재와 서종철 초대 KBO 총재와 건배를 하고 있다. 사진=스포츠서울

[스포츠서울|LA=문상열전문기자] KBO의 새로운 총재는 시대 흐름에 맞는 인사가 돼야 한다.

메이저리그(MLB)가 연방판사 출신 케네소 마운티 랜디스를 초대 커미셔너로 추대한 이유는 1919년에 터진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월드시리즈 져주기 경기 이른바 블랙삭스 스캔들을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랜디스 커미셔너는 당시 슈퍼스타이며 져주기에 게임에 소극적으로 가담한 ‘슈리스’ 조 잭슨을 포함해 8명을 야구계에서 영구추방했다. 랜디스는 MLB를 정화하면서 1920년~1944년 현직에서 사망할 때까지 최장수 커미셔너로 재임했다.

MLB 구단주들은 랜디스 이후 강력한 커미셔너였던 보위 큔이 1984년에 물러난 뒤 피터 위베로스를 영입했다. 항공사를 운영했던 위베로스는 1984년 LA올림픽 조직위원장 출신이다.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흑자 올림픽이 1984년 LA올림픽이다. 이런 후광에 힘입어 MLB 커미셔너로 추대됐다.

위베로스가 부임하기 전 MLB는 26개 구단 가운데 21개팀이 적자였다. 구단주들은 획기적으로 수입을 낼 수 있는 비지니스 마인드의 커미셔너가 필요했다. 위베로스는 커미셔너로 임명되면서 활동비를 종전 5000 달러에서 25만 달러로 늘였다. 연봉도 전임 큔보다 2배가 많은 45만 달러를 받았다. 구단주들은 위베로스의 요구를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실제 위베로스는 1984~1989년에 재임하는 동안 MLB 구단들의 재무상황을 현저히 바꾸어 놓았다. 1987년에는 1973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 2130만 달러의 이익을 창출했다. 그런 위베로스가 왜 단임으로 끝났을까. 노사단체협약을 어기고 구단주들의 담합을 촉진하는데 앞장선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MLB는 선수단노조의 소송에 패해 2억8000만 달러의 벌금을 제재받았다.

위베로스의 후임으로 영입된 인사가 예일대 총장 출신 바틀랫 지아마티다. 그 역시 시대의 요청이었다. 전임 위베로스 시대가 너무 상업적으로 흐른 탓에 MLB는 정통성을 요구받았다. 그러나 후임 지아마티는 안타깝게도 1989년 재임 1년도 안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지아마티는 안타왕 피트 로즈의 도박혐의를 밝혀내 그를 MLB 사상 두 번째 영구추방시켰다.

Owners Meetings Baseball
2015년 1월25일 커미셔너 자리에 오른 롭 맨프레드는 1987년부터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근무했다. AP연합뉴스

현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는 오랫동안 사무국에서 종사하며 노사단체협약을 성사시켰다. 두 번째 장수 커미셔너 버드 실릭이 사실상 지명하고 물러나 커미셔너까지 올랐다. 현재의 메이저 종목 커미셔너의 역할 가운데 가장 우선이 노사단체협약이다. 다음이 리그의 균형발전이다. 마켓이 작은 팀도 플레이오프 경쟁을 벌일 수 있도록 제도개선, 샐러리캡 강화 등이 이에 속한다.

KBO도 대체적으로 외부 흐름에 따라 총재를 뽑았다. 초대 서종철 총장은 전두환 정권과 연이 닿았고 여러가 현안을 정치적으로 해결했다. KBO 초창기에는 영향력이 큰 정치권 인사가 필요했다. 1대부터 11대 정대철 총재까지가 그랬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구단들은 야구발전에 힘이 될 총재를 원했다. 1998년 12월 두산 베어스 구단주 출신 박용오 총재 체제가 그 시작이다.

KBO의 불행은 뿌리를 내렸다 싶었던 박용오 총재에서 다시 정치인 신상우 체제로 복귀하며 후퇴했다. 그리고 2018년에 임기를 시작한 정운찬에 이은 정지택 체제 또한 실패로 마감했다. KBO는 4년을 허송세월했다.

이제 KBO도 시대에 걸맞은 제대로 된 총재가 요구된다. 야구가 취미였던 인사를 새로운 총재로 선택해선 안된다. 낙하산도 안된다. KBO에 쌓여있는 여러 현안을 즉석에서 브리핑할 수 있고, 해당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정도의 야구 식견이 필요하다. 2022년은 그런 총재를 원하고 있다. KBO는 역사의 시험대에 올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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