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고척=윤세호 기자] 양질의 불펜을 앞세워 상대 타선을 압도하는 야구가 대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렇다. KBO리그에서는 KIA가, 메이저리그에서는 LA 다저스가 절묘하게 ‘불펜 게임’을 펼친다. 선발이 6이닝 이상을 소화하지 못해도, 때로는 불펜 데이에 임해도 승리할 수 있다. 강한 공을 던지는 중간 투수를 다채롭게 투입해 승리를 완성했다.
프리미어12 한국 대표팀 승리 공식도 다르지 않다. 마운드 구성상 선발보다는 불펜에 무게가 느껴진다. 구성 과정부터 그랬다. 35인 엔트리를 발표하기에 앞서 국내 선발 중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문동주가 어깨 통증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그리고 플레이오프(PO) 기간 손주영이 팔꿈치 부상, 한국시리즈(KS) 기간 원태인이 어깨 부상으로 시즌 아웃됐다.
그러면서 대표팀은 곽빈 고영표 임찬규 최승용 엄상백으로 선발진을 꾸렸다. 구위형 선발 문동주와 손주영, 국내 선발 평균자책점 1위(3.66) 원태인 없이 프리미어12 무대에 오른다. 사실상 1선발부터 3선발을 맡아줄 투수가 모두 빠진 대표팀이다.
그래도 불펜진은 계획대로 구축했다. KBO리그 최고 구위를 자랑하는 중간 투수를 한자리에 모았다. 가을야구에서도 든든히 마운드를 지킨 박영현과 김택연. 전역 후 빠르게 클로저로 올라선 조병현까지 파워 피처 셋이 필승조 트리오를 이룰 전망.
여기에 포스트시즌 막강 구위를 뽐낸 소형준도 이번 대표팀에서는 불펜에서 대기한다. KIA의 KS 우승을 견인한 핵심 불펜 자원 정해영과 곽도규도 정상 등극 기쁨을 뒤로 하고 30일 저녁부터 대표팀 일정을 소화한다.
대표팀 류중일 감독이 기대하는 부분도 불펜에 있다. 류 감독은 지난 29일 “박영현 김택연 소형준이 불펜 피칭하는 모습을 봤다. 셋 다 좋았다”고 미소 지으며 “KS를 봤는데 곽도규도 좋았다. 곽도규가 있어서 KIA가 불펜이 힘이 생긴 것으로 봤다”고 밝혔다.
선수가 느끼는 감정도 다르지 않았다. 박영현은 29일 훈련을 마친 후 “내가 봐도 우리 대표팀 불펜이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 정말 좋은 투수가 다 모인 느낌”이라며 “이런 투수들과 함께 한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AG) 이후 다시 태극마크를 단 소감을 전했다.
이어 그는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단기전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팀이 바라는 역할을 잘하는 것만 생각하겠다. 어느 시점에서 던져도 상관없다. 멀티이닝도 괜찮다”면서 “작년 AG 때도 그랬는데 대표팀에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더 끓어오르는 게 있다. AG에서 괜찮았고 이번 포스트시즌도 나쁘지 않았다. 흐름을 프리미어12까지 이어가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박영현은 팀 동료 멜 로하스 주니어와 대결도 머릿속에 넣었다. 로하스가 프리미어12 도미니카 대표팀에 선발됨에 따라 내달 16일 한국과 도미니카 경기에서 박영현과 로하스가 맞붙을 가능성이 생겼다. 박영현은 “로하스를 만나면 삼진으로 잡겠다. 로하스는 500타석 이상을 봤다. 약점을 알고 있다. 물론 로하스도 외야에서 내가 던지는 모습을 많이 봤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좀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안타는 맞더라도 홈런은 안 맞는 볼배합을 하겠다”고 밝혔다.
첫 실전도 잡혔다. 박영현은 내달 1일 쿠바와 평가전에 등판할 계획이다. 이날 대표팀은 1회에는 선발을 올리지만 이후 박영현을 포함해 중간 투수들에게 1이닝씩 맡기는 운영을 한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