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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이천=황혜정기자]
“이 유니폼을 입고 뛰는 것도, 이 팀 이름으로 경기에 나가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에요.”지난 23일 여자 야구 전국 대회 ‘LX배’ 결승전이 경기도 이천시 ‘LG 챔피언스 필드’ 주경기장에서 열렸다. 결승전에 앞서 챔프조 3·4위전에 ‘당진 주니어’와 ‘후라’가 맞붙었다.
두 팀 모두 2022년도 국가대표 선수들이 다수 소속돼 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한다. 리틀 야구 선수 출신 4명으로 구성된 비교적 어린 연령대의 ‘당진 주니어’와 경험이 많고 파이팅이 넘치는 ‘후라’의 대결은 기대감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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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진 주니어’는 1회초부터 실책을 범하며 쉽게 점수를 헌납했다. 가뜩이나 이 유니폼과 이 팀으로서 마지막 경기라 3위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데 마음만 조급해져 손과 발이 꼬였다.
마지막 경기인 이유는 그동안 ‘(사)당진해나루 스포츠 클럽’에서 ‘당진 주니어’를 지원했는데, 예산 부족으로 지원이 잠정 중단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4일 창단된 팀이 2년이 채 안 돼 해체가 확정됐다. ‘당진 주니어’ 학부모들은 총회를 통해 지난 24일 클럽 측에 팀 해체를 통보했다.
‘당진 주니어’가 창단된 계기는 야구를 하는 여학생이 또래들과 계속해서 야구를 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학생은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밖에 리틀 야구대회에 출전하지 못한다. 남학생들이 야구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해 엘리트 코스를 밟는 데 반해 여학생은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
이에 고등학교에 진학 예정인 학부형들이 머리를 맞대 당진해나루 클럽과 당진야구소프트볼협회, 그리고 한국여자야구연맹 등의 지원을 받아 팀을 창단했다. 자녀들이 계속해서 운동을 이어갔으면 해서다. 선수들은 전북 군산, 화성 동탄, 경기도 안산, 세종, 천안, 대구, 인천 등 다양한 곳에서 오로지 ‘야구’ 하나를 위해 매주 주말 당진으로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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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해나루 스포츠 클럽’ 관계자는 스포츠서울과의 통화에서 “그동안 사측 예산의 30%가 넘는 돈을 ‘당진 주니어’ 운영비에 써왔다”고 했다. 이어 “결국은 돈이 없는게 문제다. 우리도 투자한 돈이 있기 때문에 팀 해체까지 바리지 않았다”며 “기금이 끝나 지도자에 월급을 제공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휴강을 제안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당진 주니어’에 야구장 시설 및 식음료 등을 후원·제공했던 ‘당진시야구소프트볼협회’ 관계자 역시 “우리도 손을 떼면 편하다. 모두가 고생을 많이 했다. 타 종목들의 비난도 받아가며 어려운 과정 속에서 설득하며 여기까지 기반을 다져왔는데 이렇게 돼 여러모로 아쉽다”고 토로했다.
집과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오가며 운동을 해오던 ‘당진 주니어’ 선수들은 아쉬움 일색이다. ‘당진 주니어’ 감독 정용운(전 KIA·LG 투수)씨 역시 “팀이 해체된다고 하니 나도 아쉽다”며 “어린 선수들이 연습이 부족하면 안 되는데 걱정된다. 정해진게 아무것도 없어서 아쉽다. 여자 야구는 특히 우리나라에서 프로 선수라는 선택지가 없는데도 이렇게 다들 평소처럼 열정적으로 운동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안 좋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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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LX배’에 우승을 목표로 왔지만 준결승전에서 아쉽게 패해 3·4위전을 하게 된 ‘당진 주니어’. 그들은 마지막 경기에서 2회초 3-0에서 석 점을 추가로 내주며 대량 실점의 위기에 몰렸으나 1사 2루에서 더블플레이로 이닝을 무사히 마무리지었다.
앞서 2회초 2루수 김은혜(중3)가 수비 실책을 범했다. 김은혜는 이닝이 종료되고도 잔상에 남는지 자책을 했다. 그러자 주장 장윤서(고2)가 김은혜를 다독이며 “괜찮아! 방금 수비 잘해서 이닝 끝났잖아! 울지마. 괜찮아!”라며 팀에서 키가 가장 작은 김은혜의 어깨를 감싸며 어른스럽게 위로했다.
경기 시작 2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당진 주니어’가 마지막 공격 기회인 4회말, 1사 만루 찬스를 만들었다. 1-12로 크게 지고 있었지만 모두들 후회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2사 1, 3루에서 김은혜가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국가대표 외야수이자 이 팀의 좌익수 손가은(중3)이 만루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섰다. 그가 몸에 맞는 볼로 밀어내기 한 점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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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당진 주니어’는 최종 스코어 4-12로 패했다. 선수들은 4위로 ‘당진 주니어’로서의 ‘LX배’ 여정을 끝냈다. 몸이 굳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실책을 저지른 선수들은 아쉬운 나머지 눈물을 펑펑 쏟았다. 다시는 이 친구들과 함께 야구를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두려움, 기약 없음이 10대 소녀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당진 주니어’의 주장이자 국가대표 내야수를 맡고 있는 장윤서는 경기 후 “우승이 목표였는데 아쉬움만 남는 경기다. 앞으로 팀 동료들이 갈 길을 잘 찾길 바랄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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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여자야구연맹(WBAK) 역시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자구책을 찾는 중이다. WBAK 황정희 회장은 경기 종료 후 울고 있는 선수들을 토닥이며 한데 불러모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과연 ‘당진 주니어’는 선수단과 감독, 코치가 변동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돼 새로운 지원군을 찾을 수 있을까. ‘LX배’가 열린 ‘LG 챔피언스 필드’는 여자 야구 선수들에게 꿈의 구장으로 꼽힌다. 프로 구장과 맞먹는 잔디를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누군가는 꿈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꿈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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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 황혜정기자 et1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