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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괜찮은데 손목을 강하게 잡히는 건 너무 무서워요.”

얼굴로 주먹이 날아오는 건 크게 당황하지 않고 배운 대로 대응법을 연습하는데, 상대에게 손목만 잡히면 온 몸이 얼어붙는다. 얼굴 표정에 공포가 어리고, 심한 경우 호흡까지 거칠어진다. 집에 돌아가도 그 충격이 이어지고 호신술을 배울지 말지까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다음 호신술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문을 열고 걸음을 내딛는다.

이 한걸음을 딛는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는 전쟁, 고문, 사고, 재해 등 심각한 사건을 경험하며 느낀 공포감을 사건 후에도 특정 상황이 되면 동일하게 느끼면서 큰 고통으로 연결되고 결국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하기 힘들어지는 증상을 의미한다.

최근에 들어서 PTSD라는 용어가 일반인들에게 많이 익숙해지긴 했지만, 사실 안전한 나라에서 큰 사고없이 성장하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하다. 그래서 PTSD가 얼마나 심각한 질병인지 증상을 가지고 있는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를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과거에는 PTSD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정신력이 약해서 그렇다”고 오히려 비난하거나 “그 정도는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며 어설픈 응원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특히 최근 대두되고 있는 성폭력은 더욱 심각하다. 미국 해병대 출신으로 PTSD관련 책을 낸 데이비드 모리스는 ‘성폭력 피해자가 전쟁터를 겪은 군인보다 PTSD를 겪을 확률이 네 배나 높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성별차이, 세대 차이 등에 의해 성폭력 피해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받지 못 하고 있다.

서두의 에피소드 역시 이런 무지에서 출발한다. 호신술을 배우기 위해 무술도관이나 격투기 체육관을 찾는 분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시작한 사람들도 있지만, 이미 경험을 했기 때문에 다시는 같은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배움을 시작한 사람들도 있다.

전자의 경우, 일반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 기술을 배우고 반복 연습하면서 숙련되면 된다. 하지만 후자는 전자들과 다르다. 연습을 잘 하다가도 특정 상황이 연출되면 갑자기 움직임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본인 스스로도 못 느끼는 경우가 있는 이런 현상은 머리와 몸에 남아있는 공포의 기억 때문에 생기는 PTSD 증상이다.

이를 알 리가 없는 지도자는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가며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알려주지만, 이는 오히려 공포의 순간을 더 자세하게 되짚어주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화가 필요하다. 호신술을 배우기 시작할 때 지도자에게 “이러이러한 경험이 있고 아직까지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대응이 어렵다”를 얘기한다면 그에 맞춰 공포를 극복하며 연습하는 단계를 차근차근 밟을 수 있다.

본인 스스로가 아직 어떤 상황에서 PTSD가 오는지 파악하지 못했다가 연습 도중 찾아냈다면 이를 즉시 지도자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떠올리기 싫은 기억인 만큼 다른 사람에게 밝히는 것 자체가 싫을 수도 있다.

따라서 지도자 역시 수련자를 세밀하게 관찰해야 하며 문제를 감지한다면 조심스럽게 대화를 통해 개개인에 맞는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한 단순히 기술을 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폭력 피해자의 상황과 심리 상태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꾸준히 공부도 해야 한다.

‘호신’, ‘호신술’이라는 명칭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져 왔다. 그동안 ‘이런 상황에는 이런 기술을 활용해서 탈출해야 한다’가 호신술의 전부였다면, 이제는 이미 상처를 입은 분들이 공포를 극복하고 더욱 단단한 보호막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배우는 이의 적극적인 요구와 지도자의 끊임없는 연구가 선순환되어야 한다.

노경열 JKD KOREA 이소룡(진번) 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노 관장은 기자 출신으로 MBN,스포츠조선 등에서 10년간 근무했으며, 절권도는 20년 전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현재는 서울 강남에서 JKD KOREA 도장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