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하은기자] 수많은 영화 감독들의 페르소나, 배우 설경구(56)가 어느덧 데뷔 31주년을 맞이했다.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누적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한 ‘실미도’를 비롯해 ‘박하사탕’, ‘오아시스’, ‘공공의 적’, ‘해운대’ 등 한국 영화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엔 늘 설경구가 있었다. 30년이 넘는 필모그래피만큼이나 이창동, 강우석, 이준익, 변성현 등 유명 스타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충무로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설경구가 이번엔 늘 도전적인 시도로 주목받는 김용화 감독과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여름 극장가에서 깊은 인연이 있다. 2013년 설경구가 출연한 영화 ‘감시자들’이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고’와 맞붙었고, 그에 앞서 2009년 여름 쌍끌이 흥행을 한 ‘해운대’와 ‘국가대표’ 역시 각각 설경구 출연작과 김 감독의 연출작이었다.

그리고 2023년 여름, 모처럼 한국 영화 대작들로 후끈 달아오른 극장가에 영화 ‘더 문’으로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았다. 2일 개봉한 ‘더 문’은 쌍천만 신화 ‘신과함께’ 시리즈를 연출 김용화 감독의 첫 우주 프로젝트로 대한민국 최초의 유인 달 탐사를 소재로 한 우주 생존 드라마다. 오랜만에 여름 영화시장에서 관객과 만나는 설경구는 “이렇게 영화가 많을 줄 몰랐다. 역대급인 거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설경구는 본래 우주 SF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규모의 제작비도 그렇지만 현실과 맞닿지 않는 먼 이야기란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더 문’ 출연을 결심한 건 김 감독이 보여준 신뢰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시나리오 없이 처음 만났다. (김 감독)이 어떻게 달을 구현해낼지 이야기 해줬는데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있으면 다르지 않을까 싶었다. 완성도가 떨어지면 이야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텐데 왠지 김 감독은 표현해낼 거 같더라. 호기심이 있었다.”

설경구는 처음 호흡을 맞춰 본 김 감독에 대해 “소년같다”고 표현했다. “포커페이스를 못한다. 오히려 좋다, 싫다고 반응을 즉각적으로 줘서 일할 때 편했다”며 “‘더 문’을 시사회 때 처음 봤는데 굉장히 웅장하더라. 박수쳐 주고 싶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제작비 280억원이 들어간 ‘더 문’은 진일보한 시각특수효과(VFX) 기술을 통해 우주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더 문’ 속에서 그린 우주의 사실성에 전문가들도 극찬을 보냈다.

지난달 27일 대전에서 항공 우주, 달 탐사 연구, 우주선 연구 개발 등 관련 산업 종사자들과 함께한 ‘더 문’ 특별시사회에 참석한 설경구는 “한 박사님이 떨리는 목소리로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보는 줄 알았다고 하시더라. 실제 같다는 착각을 했다고 하셔서 달 표현이 잘 됐나보다 싶었고 마음이 짠하고 울림이 있었다”고 뿌듯한 마음을 전했다.

‘더 문’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재국은 사령선 설계를 책임졌던 과학자이며 위험에 처한 대원을 살려야 하는 인물이다. 도경수가 우주와 달을 오가며 생존을 걸고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을 해간다면, 설경구는 과거의 죄책감과 현재의 책임감 사이에서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홀로 내면의 싸움을 하는 외로운 인물이다. 설경구는 뜨거움과 차가움을 오가는 재국을 30년 내공을 담은 깊이 있는 눈빛과 몰입력으로 표현해냈다.

그럼에도 설경구는 우주에서 고군분투하는 도경수의 연기를 보고 “나는 날로 먹은 거 같아 부끄럽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후배 연기자인 도경수의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는 설경구는 “나도 모르게 영화를 보면서 몸에 힘이 들어가더라. 경수가 우주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들을 보며 저절로 그렇게 됐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그래도 센터에 다른 출연진들과 함께 촬영해서 의지할 사람이 많았는데, 도경수가 혼자 애쓴 거 같다”라며 마음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엔딩신에서 보여준 도경수의 미소를 언급하며 “경수가 정말 해맑게 웃더라. 극중 재국은 아직 용서받아야 할 마음, 해결하지 못한 감정들 때문에 그렇게 웃지 못했지만 환하게 웃던 경수의 모습은 아직도 그 현장이 기억날 정도로 생생하다”고 떠올렸다.

설경구는 ‘연기돌’과 인연이 깊다. 그는 ‘지천명 아이돌’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아이돌 출신 연기자들과 호흡을 많이 맞췄다. 설경구는 그룹 엑소로 활동 중인 도경수를 비롯해 그간 출연한 작품 속에서 유독 가수 출신 배우, ‘연기돌’들과 좋은 시너지를 보여준 바 있다. 앞서 제국의아이돌 출신 임시완과는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을, 2PM 이준호와는 그의 연기 데뷔작인 영화 ‘감시자들’로 호흡을 맞췄다. AOA 멤버 설현과는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을, 갓세븐 박진영과는 넷플릭스 영화 ‘야차’로 함께 했다.

설경구는 “제가 뭔가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그 친구들이 저랑 같이 있을 때 (케미를) 다 만들어줬다”고 몸을 낮췄다. 특히 최근 ‘옷소매 붉은 끝동’에 이어 ‘킹더랜드’까지 흥행을 이끌며 주연배우로 성장한 이준호에 대해 “‘감시자들’이 연기 첫 도전이었는데 지금 배우로서 너무 잘 돼 기쁘다”며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 시상을 하러 갔다가 만났는데 반갑더라”라고 말했다.

설경구는 ‘밀수’를 시작으로 ‘비공식작전’,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줄줄이 공개되는 여름 극장가 대작들 사이에서 ‘더 문’을 봐야하는 이유에 대해 “유일한 가족 영화”라고 꼽았다.

그러면서 “그전까지 SF 장르의 영화는 나와 분리돼서 봤다면 ‘더 문’은 누군가에게 몰입해서 보실 수 있는 드라마다. 저 역시 SF에 대해 나와는 동떨어진 세상의 이야기란 선입견이 있었지만 경수에게 몰입해서 보면서 그 선입견이 깨졌다”며 시각적인 효과를 통한 우주 체험과 함께 울림과 공감도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자부했다.

설경구는 ‘더 문’에서 미국 NASA(나사)에서 함께 일한 동료로 호흡을 맞춘 배우 김희애와 나란히 차기작 ‘보통의 가족’(허진호 감독)으로 돌아온다. 두 형제의 자녀들이 얽힌 사건을 마주한 형제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심리극으로 설경구, 김희애를 비롯해 장동건, 수현 등이 출연하며 9월7일 개막하는 제48회 토론토 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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