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경제나 정치, 사법 권력을 가진 자들의 2세가 학교 폭력과 연관된 뉴스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곤 한다. 부모의 막강한 힘을 이용해 엄청난 잘못을 저질러도 뒤늦게 밝혀진다. 무너진 교권 아래 교사들은 물론 경찰도 힘을 쓰지 못 할 때가 있다.

새 영화 ‘용감한 시민’은 사회 부조리를 날카롭게 짚어낸다. 다만 외피는 만화적인 분위기와 유쾌한 유머를 담았다. 그리고 액션으로 마무리 짓는다.

신혜선은 호쾌한 액션을 담당하고, 이준영은 소스라치게 무서운 악을 표현한다. 노련미가 있는 박혁권과 차청화가 유머를 맡았다. 세 축이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한다. 끝내 시원하게 터지는 액션은 마치 ‘반칙왕’을 방불케 하며, 악을 대하는 연출가의 시선 역시 꽤 올바르다.

복싱 선수 출신 기간제 교사 소시민의 목표는 오롯이 정교사다. 4대 보험이 보장되는 평생직장인 교사에 대한 갈망이 크다. 모든 선배 교사에게 웃으면서 대하고, 허드렛일을 떠안는다. 심지어 교감에게 성추행당해도 미소로 넘어간다. 정교사가 될 때까진 무엇이든 참으려고 한다.

시민은 이재경(차청화 분) 부장으로부터 비밀을 듣게 된다. 시민의 티오가 사실 자살한 교사 때문에 생긴 자리라는 사실이다. 해당 교사가 죽은 이유는 한수강(이준영 분)으로부터 처절한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이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수강을 아무도 막지 못한다.

수강의 아버지는 학교 재단에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며, 새엄마는 대형 로펌 변호사. 교사는 물론 경찰도 수강의 범죄를 외면한다. 수강은 할머니와 사는 진형(박정우 분)을 괴롭힌다. 자신에게 대들어서다. 상상할 수 없는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시민이 우연히 발견한다. 정교사가 될 때까지 귀를 막고 눈을 감겠다고 다짐한 시민의 주먹이 꽉 쥐어진다.

‘그놈 목소리’(2007), ‘내사랑 내곁에’(2009), ‘공범’(2013) 등을 연출한 박진표 감독의 액션은 상당히 실감난다. 여성이 남성과 호적을 벌이는 대목을 설득력있게 표현하기 쉽지 않은데 ‘용감한 시민’은 그걸 해낸다. 특히 서로 치고받고를 반복하는 시민과 수강의 맞대결은 멋있을 뿐 아니라 캐릭터도 반영한다.

복싱을 베이스로 컷을 짧게 여러 개로 가져가는 연출은 속도감을 준다.동시에 주위 소품을 이용한 액션은 현실감을 얹는다. 특히 중간중간 두 배우의 일그러진 표정을 담아내면서, 관객이 이야기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유독 강점을 보였던 배우 신혜선이 액션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큰 키를 이용한 움직임이 잘 어울릴 것이라는 반응이 있었다.

베일을 벗은 신혜선의 액션은 기대 이상이다. 긴 팔다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복싱뿐 아니라 합기도, 레슬링 등 다양한 운동을 모두 섭렵, 웬만한 남성도 어려운 액션 연기를 매우 수준 높게 펼쳐냈다. 윙윙 몸을 돌리며 상대의 펀치를 피하고, 주위를 활용해 힘을 반동시킨 뒤 각종 킥을 날리는 장면은 상당히 호쾌하다. 시원시원하고 후련한 느낌이 든다.

단순히 액션뿐 아니라 이전부터 늘 잘해온 드라마 연기 역시 다채롭다. 정교사가 되기 위해 간이고 쓸개고 모두 빼고 가증스럽게 웃는 모습은 물론, 정의감에 불탔을 때 진지한 태도, 소영택(박혁권 분), 이재경과 티키타카로 만드는 유머 등 신혜선의 장기가 가득 담겼다.

선한 소시민의 안타고니스트 한수강을 맡은 이준영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D.P.’ 시즌1을 시작으로 ‘마스크걸’에서도 악역을 맡은 이준영은 이번에 어떤 동정도 받을 수 없는 최악의 악을 그려낸다. 재밌다는 이유로 상대를 괴롭히고 가학적인 행동을 하는 인물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악역 분야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라는 걸 스스로 증명한다.

신혜선과 이준영 외에도 신인 배우들의 연기가 빛난다. 특히 한수강에게 처절한 괴롭힘을 당하다 못해 정신적으로 큰 트라우마를 겪는 진형 역의 박정우가 눈에 띈다. 꽤 어려운 연기였을 텐데, 감정을 적절히 절제하며 관객을 이입하게 만든다. 진형 이전에 괴롭힘을 당한 병진 역의 배현준은 귀여운 연기로 영화에 담긴 만화적인 톤을 살려내는 데 일조한다. 두 배우는 ‘용감한 시민’이 발견한 재능이다.

뻔한 권선징악일지라도 빌런을 어떻게 처치하느냐에 따라 관객이 느끼는 시원한 맛이 달라진다. ‘용감한 시민’은 사적 복수와 공적 처벌, 그리고 악에 대한 저주까지 던진다. 극단적인 악을 대하는 태도가 간결하면서도 분명하다. 덕분에 영화를 즐기러 온 관객들에게 적잖은 카타르시스를 전하지 않을까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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