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최규리기자] “보통 오전 9시에 나와요. 요기 앞에 백화점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 아침 대신 붕어빵 먹으려고 사러 오거든요.”

아침 기온이 10도 전후로 뚝 떨어지면서 초겨울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찬바람에 길거리 음식 판도도 바뀌고 있다. 지난 여름 탕후루가 휩쓸고 간 자리엔 붕어빵, 국화빵, 호떡, 군고구마와 같은 겨울 대표 간식 노점들이 등장할 차례다.

매해 겨울마다 길거리에 즐비했던 붕어빵 노점이 왜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붕어빵 노점을 찾아 헤매다 영등포역 인근에서 겨우 만난 60대 상인은 “하는 수 없이 가격을 인상했다”며 “이제 붕어빵 노점도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고 토로했다.

◇ 2마리에 1000원이어도 ‘귀한 몸’…“붕어빵 가격 올라도 남는 거 없어요”

붕어빵 노점이 사라진 이유는 구청 단속도 있지만 팬데믹과 원재료 가격 상승 영향이 컸다. 이에 1000원짜리 붕어빵을 사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사러 가는 사람들도 있다. 붕어빵 노점 인근에 살면 ‘붕세권’에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가슴속 3000원’이라는 애플리케이션으로 붕어빵 노점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GS25가 지난 7월 소비자 684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소비자들이 꼽은 겨울철 대표 간식은 붕어빵이 44%로 1위로 꼽혔으며 군고구마 30%, 호빵 11% 등이 뒤를 이었다.

붕어빵을 사고 싶었으나 판매처를 찾지 못했던 경험이 있는 소비자는 81%였고, 겨울철이 아닌 여름철에도 붕어빵을 구매할 의사가 있다는 응답은 66%였다.

한 커뮤니티에는 “붕어빵 참 먹기 힘들다”며 “붕어빵 앱으로 겨우 찾았다. 퇴근하고 오후 7시에 갔는데 이미 줄이 길게 서 있었다”고 털어놨다. 붕어빵 가격이 올라도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여전하다.

서울 영등포역 인근에 있는 한 붕어빵 노점엔 2마리에 1000원이라는 가격이 공지돼 있다. 과거 코로나 이전에는 붕어빵 가격이 3마리 1000원, 구청 단속 전에는 4마리 1000원이었던 때도 있었다.

붕어빵은 현재는 한 마리에 500원꼴로 과거보다 약 2배 가량 인상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특히 강남, 명동과 같은 관광객이 밀집된 서울 주요 도심지역에는 2마리 3000원에 팔기도 한다.

붕어빵 가격 인상 요인에는 ‘속 재료’ 영향이 크다. 영등포역 인근에서 붕어빵을 판매하는 상인은 “엄청나게 올랐다”라며“속 재료값 때문에 한 마리에 1000원 받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aT에 따르면 실제 붉은 팥(국산) 40㎏의 30일 기준 가격은 44만6400원으로 지난해 대비 7만3800원 상승했다. 33%나 올랐다. 지난주보다 8800원 오른 것으로 보아 속 재료 팥 가격은 계속 오를 전망이다.

팥을 감싸는 밀가루 가격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크게 오르면서 지난해 대비 45% 상승했고 식용유도 67% 올랐다. 결국 가격이 저렴해 부담없이 사먹을 수 있는 게 장점이었던 붕어빵도 재료비 인상의 영향을 피할 수 없어졌다.

특히 국내는 식량 자급률이 낮고 주요 곡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인상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확전 우려로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불안해지면서 현재 붕어빵 가격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기다 붕어빵을 굽는 LPG 가격까지 올랐다. 국제 LPG 가격은 지난 8·9월에 톤(t)당 평균 77.5달러, 90달러 오른 데 이어 이번 달에도 평균 52.5달러 인상되면서 상승 폭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붕어빵을 판매하는 상인은 “가스 소비가 계속되고 있다. 이거는 장사가 안돼도 계속 틀어놔야 한다”며 “껐다, 켰다 할 수 없지 않으냐. 손님들은 따뜻하게 나온 걸 얼른 사고 가야 하는데…. 다 팔고 끝나는 시간인 오후 8시까지 틀어놨다. 붕어빵 장사도 언제까지 하려나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 카페·편의점·백화점에도 붕어빵 등장…“우리가 붕세권 할게”

원재룟값 인상, 가스비 인상, 팬데믹 영향 등으로 붕어빵 노점이 점차 사라져도 붕어빵에 대한 수요는 계속되고 있다. 이에 카페, 백화점서도 수요에 대응해 붕어빵을 판매하며 매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디저트 브랜드 설빙몰에서 ‘미니 붕어빵 팥 1㎏’ 1만7900원, 실제 설빙 카페 내에서는 5마리에 29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영등포구청역에 있는 한 개인 카페에서는 직접 붕어빵 기계를 구매해 그 자리에서 구워 팔기도 한다.

롯데백화점은 성수동 붕어빵 맛집인 ‘붕어유랑단’과 협업해 11월 1일부터 12월 7일까지 ‘전국 붕어 주간’을 콘셉트로 15개 점포에서 ‘붕어빵’ 팝업스토어를 운영한다. 특히 롯데백화점은 젊은 고객층을 저격해 기본 팥맛 이외에도‘계란 치즈’, ‘콘 치즈’, ‘불닭 만두’, ‘스폐셜 피자’ 등의 이색 메뉴를 엄선해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편의점 GS25도 붕세권에 동참했다. GS25는 지난 9월부터 이른바, ‘길거리 붕어빵’을 그대로 재현한 ‘꼬리까지 맛있는 붕어빵’(이하 붕어빵)을 즉석식품으로 선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GS25는 붕어빵 출시 이후 판매 추이를 분석한 후 취급 상품의 종류를 확대하는 한편, 4계절 상시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붕어빵 노점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지만, 겨울철이 다가오면서 붕어빵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붕어빵 노점 위치를 알려주는 이른바 붕세권 지도 앱 ‘가슴속 3000원’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 수는 10만회 이상으로 인기가 뜨겁다.

또한 붕어빵을 사 먹기 힘들어지자 직접 가정에서 붕어빵을 굽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커머스 플랫폼 쿠팡에서는 붕어빵 반죽, 붕어빵 팬, 붕어빵 만들기 세트 등을 판매하고 있다. 실제 한 누리꾼은 상품평에 “겨울엔 역시 붕어빵이라 사러 갔더니 물가에 너무 놀라서 안 사게 됐다”며 “차라리 만들어 먹는 게 이득일 것 같아 구매했다”고 남겼다.

노점에서 붕어빵을 사 가던 윤다빈(32·여)씨는 “슈가인플레이션, 밀크인플레이션 등 원재료 인상 뉴스를 보면서 물가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며 “붕어빵에도 ‘빵플레이션’이 온 것 같다. 씁쓸하지만 가격이 오른 것은 이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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